제목 | 마침내.... [허윤석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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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순정 | 작성일2011-04-30 | 조회수479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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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오늘 복음에서 참 중요한 말입니다.
마침내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예수님은 왜 새벽에 부활하셨을까요?
차라리 백주 대낮에 나타나셔야 홍보가 되지요!
예수님은
왜 하필 창녀였고 마귀들렸던 여자에게 나타나셨을까요?
그런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군요!
사람심리가 참 오묘한게
그 여자 말 않믿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동료2명에게 나타난 예수님도 믿지 않습니다. 왜일까?
바로 나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신과 완고함은 질투와 불신앙의결과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즉 교회에게 하신 일은 꾸짖음입니다.
우리마음에 불신과 안고함을 큰소리로 꾸짖고 노여워하십니다.
부활하고 축하잔치를 벌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꾸짖음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요즈음 세대는 꾸짖음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어린 자녀들이 소란을 피워도 아무도 꾸짖지 않습니다.
꾸짖었다가는 그 아이의 부모와 전쟁을 치루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것이란 표현보다
저는 막달레가 마리아가 찾아간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의 머릿속에 자격과 금지에 대해 떠올립니다.
할수 있는지 할 수 없는지 해야 되는 지 하지 말아야 되는지!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부활 할 수 있는지?
그런 과거가 있는 여자에게 왜 우리가 아닌 그 여자에게 나타나실 수 있는지?
이 말을 믿어야 되는지?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의 내용과 목적입니다.
뭉게 구름을 바라보는 어린 자녀가
저곳에 천사와 토끼와 공주가 산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너 정신병자야? 헛소리 집어치워!”라고 말하겠습니까?
앞으로 그 아이는 시인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로봇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가
“엄마 이 로봇 날아다녀 달에도 갖다왔어!”하면
그 아이에게 “너 과학자 되면 좋겠다.”라고 하면
분명 그 아이의 운명이 바뀝니다.
불신과 완고함은 우리 성직자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소중한 꾸짖음을 통해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분명 복음에는 없지만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제자들은 사과하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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