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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1일 야곱의 우물- 요한20,19-31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01 조회수370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9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 하고 말씀하셨다. 27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29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고 오시는 부활한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지력을 주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수난과 죽음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또 다른 믿음의 여정일까요 ? 오늘 말씀은 두 주간에 걸쳐 일어난 ‘주간 첫날’ (19 – 26절) 의 부활발현으로 인도합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 사건 (2 – 10절) 과 예수님 발현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11 – 18절) 그런데도 “주간 첫날 저녁” (19절) 이 되자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놓은” (19절)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 (9절) 에도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돌무덤을 열고 나오듯이 (20, 1; 마르 16, 3) 제자들에게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가장 먼저 주신 것은 ‘평화’ 였습니다. (요한 20, 19) 그 평화는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불안과 슬픔, 절망과 불신을 극복하게 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 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새로운 모습으로 닫힌 마음, 닫힌 세상을 열기 위해 오십니다. 그런데 사랑은 상처 없이는 알아볼 수 없는 것일까요 ? 그분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 는 제자들의 기억과 닫혔던 사고를 열어주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오셨음을 ‘알아뵙고 기쁨’ 에 넘치게 합니다. (14, 18 – 19; 16, 20 – 24; 20, 20절 참조)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부여하시는 ‘평화’ 는 두려움을 넘어 세상을 이기는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한테서 파견을 받은 제자들의 사명수행에 내적이고 영적인 힘이 됩니다. (21절)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사람이 생명체가 되게 하셨듯이 (창세 2, 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하십니다. (요한 20, 22) 이제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죄의 용서’ 를 전하며 새로운 창조의 삶을 열어갈 것입니다. 용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오는 사랑의 선물로써 제자들의 공동체는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 이라는 화해와 평화를 통해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용서가 없는 공동체는 사랑을 잃고, 죄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 입니다. (23절)
 
믿음의 공동체 안에도 증언을 통해 얻은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 (24절) 였지만 주간 첫날 저녁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증언하는 예수님의 발현을 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완고함으로 변해 “직접 보고,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 (25절) 는 믿음의 전제조건을 내세웁니다. 우리는 토마스의 태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너희는 표징이나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 (4, 48)  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떠올립니다.
그로부터 “여드레 뒤” (20, 26) 는 주간 첫날을 겹쳐서 날짜를 계산하던 당시 관습에 의한, 그다음 ‘주간 첫날’ 입니다. 그동안의 불신과 의혹을 없애주시려는 듯 예수님은 마음의 ‘문이 다 잠겨 있는’ 토마스에게 오시어 먼저 ‘평화’ 를 전하십니다. (26절) 예수님은 당신의 상처를 보이며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7절) 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은 ‘못자국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는’ 확인된 체현이 아니라 그분의 다가오심과 말씀으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토마스는 온전히 승복한 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8절) 하며, 부활한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29절) 고 하심으로써 우리는 보지 않고도 믿게 된 신앙인의 복됨을 만나게 됩니다. 따라서 부활신앙은 반드시 부활발현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토마스 이야기에 이어지는 글은 요한복음서의 저술목적으로 다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데 있다고 밝힙니다. (30 – 31절) 이는 예수님에 관한 모든 말씀 안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현존을 체험하는 이들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또 다른 초대일 것입니다.

묵상 (Meditatio)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의 증언은 구체적으로 그분을 만나고 싶은 소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이 만난 주님을 저만 만나지 못한 것이 영적인 아픔과 절망, 수치와 열등감으로 다가왔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닫힌 문도 넘어오시는 완전한 몸을 지니셨는데 어떻게 손바닥과 옆구리의 상처를 지니고 오실 수 있으며,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겨우 상처냐고 토마스 사도처럼 투정하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제자들의 부활증언과 토마스의 고백 앞에서도 완고한 제 마음의 빗장은 왜 열리지 않는지 …. 그러나 언제나 저를 먼저 찾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분을 찾아 헤매던 제 영혼의 그늘진 그곳, 옆자리에 앉으시며 주님은 상처입은 손을 펼치고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와 함께 ! 사랑은 상처 없이는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

기도 (Oratio)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 ! 하늘 위에 당신의 엄위를 세우셨습니다.  (시편 8, 2)

 

반명순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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