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직도 모르겠느냐?] -가톨릭교리신학원 재학생 강론 | |||
---|---|---|---|---|
작성자문명영 | 작성일2011-05-01 | 조회수1,090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안녕하세요? 저는 가톨릭교리신학원 교리교육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문명영 이시도로입니다.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전 아홉시 공동체미사가 있어서, 그 미사의 실제 강론을 신학원 재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4월 28일에 순서가 돌아와서 그날 미사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강론을 하였습니다. (물론 강론 2주일 전에 신학원 원장신부님께 미리 강론 원고를 보여 드립니다.) ----------------------------------------------------------------------------------------------- 2011년 4월 28일(목)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공동체미사 복음묵상(루카복음24,35-48) / 교리교육학과 2학년 문명영 이시도로
“아직도 모르겠느냐?”
인도의 어느 마을에, 2살 때부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8살의 미셸이라는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미셸은 어둠의 내면세계에서 짐승처럼 제 마음대로 생활하였고, 가족 또한 그녀를 짐승처럼 대하였습니다. 그러던 미셸에게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옵니다. 그는 ‘교사’가 아니라 ‘마법사’를 자칭하는 사하이라는 남자선생님이었습니다. 사하이는 집요한 노력과 사랑으로 미셸에게 수화알파벳을 가르쳐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나오도록 인도합니다. 세월이 흘러 미셸은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고, 사하이는 미셸 곁에서 그녀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대학생활을 돕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사하이가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상실하여 어둠 속으로 빠져듭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미셸이 이제는 반대로 병원에 있는 사하이 선생님을 매일 찾아가 “선생님, 아직도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하면서 빛을 찾아드리려고 애쓰는 그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무모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기적을 낳았습니다. 두 사람이 창밖에 내리는 눈을 손바닥의 촉감으로 공감하면서 사하이 선생님은 기억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미셸은 이 모든 이야기를 점자타자기로 기록하여 증언을 남깁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헬렌 켈러를 모델로 하여 2005년에 인도에서 제작된 ‘블랙’이라는 영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영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를 만져 보아라.” 하시면서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그래도 그들이 믿지 못하자 이번에는 음식을 함께 드십니다. 마치 “아직도 나를 모르겠느냐?”라고 하시는 것 같이 말입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의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고 성경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에게 어둠의 눈을 뜨게 하시려는 예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뒤에는 그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스승님으로부터 힘을 얻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세례를 받고, 스무 살 때 견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80년경에 성령세미나를 받았습니다. 성령세미나 마지막 날, 봉사자가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잘 안 되는 것이라도 주님께 간절히 청하면 성령의 힘으로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니, 청하라고 해서 저는 두 가지를 청했습니다. 한 가지는 대중음식점에서 자신 있게 성호경을 긋고 식사 전 기도를 바칠 수 있는 용기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받은 지 15년이 지났는데도 혼자 있을 때는 도저히 자신 있게 성호경을 그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개신교 신자들이나 비신자들에게 교리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개신교 친구들이나 무신론 친구들과 논쟁을 하면서 교리지식을 더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 당시에 저는 은행원이었는데, 성령세미나를 받고 두어 달 후, 은행의 우수고객인 어떤 할머니를 응접실로 모시고 가서 커피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때 그 할머니가 커피 잔을 앞에 놓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면서 크게 성호를 그으셨습니다. 저는 마음이 좀 찔끔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삼청동에 있는 금융연수원에서 1주일간 연수를 받게 되었는데, 연수 첫날 점심때 구내식당에서 제 앞에 앉은 다른 은행 직원이 크게 성호를 긋고 식사 전 기도를 바쳤습니다. 제가 이번에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아직도 모르겠느냐?”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점심때 저는 식판을 들고 사람들이 없는 식당 맨 구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성호를 긋고 식사 전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 다음 날은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식당 한가운데 앉아서 크게 성호를 긋고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지만, 지금은 이와 같이 신자들, 친구들, 직장동료 등 우리 이웃들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메시지를 전해주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5년 전 쯤 일입니다. 그날도 저는 근처의 조그만 식당에서 혼자 점심식사를 하며 크게 성호를 그었습니다. 작은 식당에는 손님도 저 하나 밖에 없었고, 주인은 저보다 좀 젊어 보이는 남자분이었습니다. 주인이 저보고 성당에 다니느냐고 물었습니다. 자기도 세례를 받았는데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15년 동안이나 냉담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모 성당의 사무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세례본당을 찾아서 교적도 새로 정리해 드리고, 어렵게 부인을 설득하여 혼인장애도 풀어드리고, 교무금 책정까지 받아냈을 뿐 아니라, 이왕 내친 김에 성당달력 광고비까지 챙겨서(?) 식당광고도 실어드렸습니다. 저도 다른 신자들에게 그 식당을 많이 이용하라고 선전해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형제님은 부인과 두 딸을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시키고 15년 만에 다시 행복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 쯤 후 화요일 아침 저는 출근하면서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례 안내판에 그 형제님의 성명과 세례명이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저께 주일 교중미사에서 행복해 보이는 그 형제님과 악수하며 서로 평화의 인사까지 나누었는데, 월요일 밤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연령회 회장님이 그분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사무장님이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셨네요.” 하셨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분의 영혼을 구한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성호경’이지요.” 그 후 유가족인 자매님과 두 딸은 제가 퇴직하기 전에 모두 예비자교리를 무사히 마치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성령세미나를 받을 때 제가 두 번째로 청했던 교리지식에 대한 기도는 30년이나 지난 후에야 들어주셨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저를 교리신학원에 입학하도록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2008년 8월에 간암에 걸렸습니다. 암에 걸린다는 것은 항상 남의 일로만 여겨졌는데 바로 저에게 그것이 현실화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날 저녁에 저는 무척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기도를 바치면서 울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못 살아 온 저의 신앙생활을 회개하고 바른 길로 돌아설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1차 항암치료를 받고 한 달 만에는 또 맹장수술을 받았습니다. 체중도 부쩍 줄었습니다.
저는 그러고도 직장을 계속 다녔습니다만, 1년 만에 간암이 재발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또 “아직도 모르겠느냐?”하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가정을 위해 힘겹게 살아온 무거운 짐은 이제 다 벗어놓아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이 단지 직장을 그만두라는 뜻 한가지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조용한 시골에 가서 편안하게 요양을 하며 건강관리를 하기로 작정하고, 서울 근교를 몇 군데 다니며 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과 하느님의 일은 달랐습니다.
그날도 저는 ‘카나의 혼인잔치’를 떠올리며 성모님께 매달렸습니다. “어머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가 비록 부족하지만 제게도 ‘포도주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예수님께 전구하여 주십시오.” 그랬더니 성모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저는 이제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 무엇이든지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무엇을 할까요?” 예수님께서 대답 하셨습니다.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워라. 그리고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바로 그 말씀이 제가 교리신학원에 입학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방식과 아집을 모두 비우고, 그 비운 마음에 하느님 말씀으로 가득 채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곧 선교사가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교리신학원을 졸업할 때에는 저의 빈 마음에 말씀의 포도주가 가득 담겨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지난 해 저는 공소체험신청서를 얼른 접수했습니다. 혹시 2학년 때에는 저의 건강이 또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소체험을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드렸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공소체험은 잘 마쳤는데, 1학년 2학기를 마치자마자 또 간암이 재발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감사드렸습니다. 1학년 과정을 다 마치고 방학 때가 되어 입원치료를 하게 해주신 것만도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도 간암이 재발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지난 해 교리교육학과 어떤 선배님도 이 자리에서 복음묵상을 나누시며 ‘하느님과도 협상을 하려면 크게 해야 된다’고 해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과욕은 금물’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저 “오늘 저에게 일용할 양식만 주십시오.” 하고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영화 “블랙”에서 미셸이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증언하였듯이, 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보고, 예수님과 함께한 모든 일을 삶과 글로써 증거하고 선포하며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였듯이 오늘 저도 앞으로 선교사가 되어, 제가 만난 하느님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도록 건강과 힘과 용기를 달라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래는 당일 복음말씀입니다.-'매일미사'에서 옮겼습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