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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하신 주님" - 5.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01 조회수300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1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민의 날)

사도2,42-47 1베드1,3-9 요한20,19-31

 

 

 

 

 

 

"부활하신 주님"

 

 

 

 

오늘 화답송 후렴이

하느님 자비 주일에 참 잘 어울려 우리의 흥겨움을 고조시킵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신록의 생명과 빛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신록의 5월은 성모성월

‘성모님의 달’이자 계속되는 부활시기로 ‘부활하신 주님의 달’,

그리고 예수님을 부활시켜주신 자비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알렐루야의 달’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기에 신록으로 빛나는 오월이요

온갖 만발한 봄꽃들입니다.

 

오늘 5월 첫 날 부활 제2주일은 참 뜻 깊은 날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알려진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 성녀가

바로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시성되었으며,

교회는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 자비 주일 선포 11주년인 오늘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복자로 시복되었다니

순전히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대로 하느님의 사랑이요,

하느님의 생명이자 빛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속속들이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숨통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 자비의 표현입니다.

숨통이 없으면 질식사입니다.

보이는 숨통과 창문만 있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숨통과 창문도 있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숨통이자 창문입니다.

어둡고 답답하던 방이 창문 활짝 열리면서

방안 가득 들어오는 푸른 하늘, 밝은 햇빛, 상쾌한 바람에

몸과 마음 저절로 활짝 열리는 체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숨통이 막혀 마음이 답답하고

우리의 창문이 닫혀 마음이 어두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우리의 숨통이자 창문이신

부활하신 주님의 면모가 잘 들어납니다.

 

주간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숨통이 꽉 막혀 있고

창문이 꽉 닫혀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온통 두려움의 벽에 싸여 있는

어둠 가득한, 곧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 순간 숨통이 되어 이들의 문을 활짝 열어주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숨통이자 창이신 부활하신 주님이 계실 때

어김없이 폐쇄의 벽은 활짝 열린 숨통의 문으로 바뀝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연거푸 세 번이나 평화의 숨통을 내시고

평화의 빛으로 공동체에 들어오신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두 번째 평화의 숨통을 여시며 하신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모두 당신을 닮은 평화의 숨통으로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이웃에 벽이 아닌

숨통 같은 존재로 살아야 진정 주님 부활의 증인입니다.

 

또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 공동체에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주시니

말 그대로 모두의 숨통이 되어 주신 셈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의 숨통으로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갈 때 죄도 용서 받고 평화와 기쁨의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중심입니다.

 

복음 서두의 묘사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공동체의 중심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우리 공동체의 중심에 살아계신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성령의 샘, 평화의 샘, 기쁨의 샘입니다.

 

이 부활하신 중심으로부터 끊임없이 샘솟는

성령과 평화가, 기쁨이

바로 1독서의 사도행전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없이는 이런 유토피아 공동체는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시도해온 모든 공동체운동이 실패했음은

바로 이 부활하신 주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의 중심에는 누가, 무엇이 있습니까?

중심에 따라 꼴 잡혀 가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공동체의 중심에 모실 때

공동체도 개인도 서서히 부활하신 주님을,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갑니다.

 

어제 가톨릭 신문에

‘현대인 영적 갈증 해소하는 오아시스’라는 제하에

서울 대교구의 ‘예닮 영성의 집’ 축복식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예수를 닮았다 하여 ‘예닮’이란 말마디가 참 신선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닮아가고 있는 모든 공동체 역시 예닮 공동체입니다.

저는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즉시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했고

여기 우리 소공동체인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을 생각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2천년동안 공동체 운동의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쇄신과 개혁의 본보기였으며

이를 모범으로 삼았던 수도공동체 운동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공동체의 중심에 모시고

함께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친교를 나누고,

성체와 음식을 나누며

공동소유에 함께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는 우리 수도공동체,

어쩌면 이리도 사도행전 공동체를 빼다 닮았는가하고 내심 깜짝 놀랐습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공동체 한 가운데 모시고

함께 빵과 소유와 친교를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무리 의식주 보장되어 있어도 희망이 없다면 지옥입니다.

희망을 잃어 끊임없이 자살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바로 절망이요 절망보다 큰 죄도 없습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낱말이 ‘절망’입니다.

십자가 수난의 절망으로부터

신록의 희망으로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바로 희망자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이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삽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대로 희망의 샘입니다.

끊임없이 샘솟는 희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사람이 되어 살게 합니다.

 

베드로 사도 바로 희망의 사람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희망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모셨기에 희망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부활하신 주님을 언급하기에 앞서

우리를 대표하여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생한 희망이자 영원한 상속재산인

부활하신 주님을 모신 이들이 정말 부자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부활하신 주님을 옆에 모시고도

몰라서 참 불행하게 사는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순수한 믿음을 지닌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하며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숨통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중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은 우리의 모두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진리를 깊이 체험하고 실감하는 미사시간입니다.

우리에게서 우리의 숨통이, 중심이, 희망이신 부활하신 주님이 사라지면

영원한 공허와 죽음의 어둠뿐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자비하신 하느님은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과 빛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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