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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적 자유의 여정" - 5.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02 조회수404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2 월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295-373) 기념일

사도4,23-31 요한3,1-8

 

 

 

"내적 자유의 여정"

 

비단 종신서원한 수도자뿐 아니라

어찌 보면 믿는 모든 이들이

평생 인생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느님의 무기수(無期囚)’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자유에 대한, 내적 자유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주님, 당신께 피신하는 이 모두 행복하도다.”

 

시편 화답송 후렴에서 ‘행복하도다.’ 대신

‘자유롭도다.’ 말마디를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입니다.

자유로울 때 행복합니다.

자유를 추구한다는 말은 그대로 하느님을 추구한다는 말과 통합니다.

 

특히 수도승 삶은 더 큰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삶이라 정의합니다.

 

믿는 이들 역시 누구나 내적 자유의 여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유로운 이들 몇이나 될까요?

 

두 가지 묵상을 나눕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속에 언제나 그 자리의 바위 같은 정주의 삶입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강에 휩쓸려 자기를 잊고 살 것이 아니라,

물속의 바위처럼,

제자리의 중심 안에 머물러

흘러가는 세월을, 자연을, 사람들을 초연히 바라다볼 때

진정 자유로운 삶이요 바로 이게 정주생활의 특권입니다.

 

얼마 전의 충격 같은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수도원 정원에서 바라다보는,

성당 옆에 바짝 붙어있는

낮은 지붕의 작은 제 집무실이 흡사 감옥처럼 보였습니다.

 

‘방-성당-집무실’이라는 삼각형 틀에서의 제 삶이요

우리 수사님들 역시 ‘방-성당-일터’의 삼각형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감옥 같은 삼각형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가정-교회-직장’의 삼각형 틀에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보면 감옥은 이 셋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고,

모든 이들이 큰 감옥, 중간 감옥, 작은 감옥 등

다양한 크기의 감옥에서 살아가는 형상입니다.

 

하여 자유를 찾아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며, 숨통을 찾고, 길을 찾고,

문을 내고, 휴가도 냅니다.

이 모두가 자유를 찾아 ‘살기위한’ 몸부림이요

이게 바로 인간현실입니다.

 

바로 여기가 영성생활의 시발점입니다.

참 자유의 원천인 하느님을 찾을 때 부단한 자아초월의 내적 자유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이들의 집은

밖에서 감옥같이 보여도

안은 우주이자 세상이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관상가의 행복의 비결입니다.

참 자유의 원천인 하느님을 찾을 때

부단한 자아초월의 내적 자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이며

최고 의회 의원인 니코데모는 자유를 찾아 밤중에 예수님께 옵니다.

 

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왔다는 자체가 자유롭지 못함을 상징합니다.

자유를 향한 근원적 욕구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법입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영원한 자유인인 예수님을 찾은

눈 밝은 구도자 니코데모입니다.

스승 예수님의 두 차례에 걸친 즉각적인 답변이요

바로 여기 참 자유의 비밀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다.”

 

물과 성령의 세례로

위로부터 태어나 시작된 우리의 내적 자유의 여정입니다.

 

그러나 한 번 세례로 끝난 자유의 여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성령을 통한 자아초월의 자유를 향한 여정입니다.

 

영원한 자유인의 모델인 주님이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이와 같다.”

 

끊임없이 성령을 통해 새로이 태어날 때

예수를 닮은 ‘예닮’의 자유인들이요,

지금 여기가 영원한 삶의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니코데모와는 대조적으로

부활하신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사도행전의 주님의 제자들은

진정 자유인의 전형입니다.

 

새삼 공동기도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제자들의 공동체 동료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듣자

한 목소리를 높여 기도합니다.

 

“주님!

  저들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공동기도가 끝나자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다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진정 담대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진리의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의 자유인으로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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