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5일 부활 제2주간 목요일
The one who is of the earth is earthly and speaks of earthly things.
But the one who comes from heaven is above all.
(Jn.3.31)
제1독서 사도행전 5,27-33
어디선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되어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언니와 동생이 버스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붙은 커다란 현수막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지요.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동생은 이 현수막을 보면서 혼잣말로 “베트남 처녀하고 결혼하면 말이 안 통해서 어떻게 살까?”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이 혼잣말이 조금 컸는지 언니가 들었나 봅니다.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이것아, 너는 신랑이랑 말이 통하냐?”
쓰는 언어가 달라서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쓰는 언어가 같아도 말이 안 통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똑같은 우리말을 쓰고 있는데도,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반대하시는 분을 만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서로 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신을 낮춰야 하는데, 그 당시 둘 다 스스로를 높이려고만 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같은 말을 사용해도 서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내 기준에서 보면 옳은 것도, 상대의 기준에서는 반대일 수 있다는 진리를 잊은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이웃과 이웃……. 끊임없는 만남이 계속되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잘 소통하면서 살고 있었을까요? 혹시 다른 사람 탓만을 하면서 “그러니까 안 된다니까.”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땅에 속한 것만을 말하는 우리들과는 달리, 주님께서는 위에서 오신 분으로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들보다 훨씬 위에 계신 주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따르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땅에 속해 있으면서도 하늘에 계신 분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바로 내 자신을 낮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소통되지 못하는 것을 뛰어넘어, 주님과도 소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사람들과 함께 잘 살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하늘에 계신 주님을 존중하며 잘 살기를 원한다면,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앞장서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겸손되이 잘 따르면 따를수록,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더욱 더 높여주시고 가장 필요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나와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한 주님과도 잘 소통이 되지 않습니까? 그만큼 내가 낮추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포용, 자기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김수환 추기경)
성무일도
오늘 독서의 기도를 하기 전에 찍은 저의 낡은 성무일도
신학생 때부터 바쳐왔던 저의 성무일도입니다. 우리 교회의 공적 기도로써, 특별히 사제는 성무일도를 바쳐야 할 의무가 있지요. 사실 저는 신학생 때 이 기도 바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도만 바치면 너무나 졸렸고, 기도문만 입으로 외는 형식적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저를 따라 다니는 하나의 짐처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신부가 되어서야 짐이 아니라 주님과 연결시켜주는 소중한 끈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안에 담겨 있는 시편의 내용이 또한 독서의 기도 속에서 보여주는 주님 말씀이 제 삶 안에서 큰 힘이 되기 때문이지요.
소중한 것은 지금 당장 깨달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소중한 것은 우리가 더욱 더 정성을 다할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보여주는데 말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섣부른 판단을 너무 많이 했었음을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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