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에서 오시는 분'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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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11-05-05 | 조회수36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위에서 오시는 분(요한 3,32-36)
-유 광수신부-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세상에서 난 사람은 세상에 속하고 세상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을 소우주라 한다. 즉 인간은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가지고 인간을 논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어쩌면 겉으로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일 것이다.
소우주인 인간은 육적인 차원과 정신적인 차원 그리고 영적인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차원 중에서 육적인 차원이 가장 하위 단계요, 정신적인 단계가 그 다음 단계이며 영적인 차원이 가장 높은 단계이다. 육적인 차원은 정신적인 차원을 지향하고 있고 정신적인 단계는 영적인 차원을 지향하고 있다. 즉 육적인 차원은 정신적인 단계를 위해서 봉사해야하고 정신적인 단계는 영적인 차원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지향하고 있듯이 하위 단계는 그 상위 단계를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 즉 인간은 육체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지향하는 목표이며 삶의 방향이다. 이런 상향 지향적인 삶을 살지 않고 하양지향 즉 가장 낮은 단계인 육체적인 만족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삶을 살아갈 때 스스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버리고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육체는 정신적인 것을 지향하고 이성과 정신은 영적인 것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질서이며 균형이며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성가가 있듯이 인간은 늘 높은 곳 즉 하느님을 향한 삶을 살아갈 때 인간다워지고 영적으로 발전하며 더 나아가 하느님을 닮아간다.
반대로 상위 단계의 것이 하위 단계를 위해서 사용되어질 때 그것은 역행하는 일로서 잘 못 사용되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 정신적인 수양은 쌓지 않고 매일 먹고 마시는 일에만 모든 시간을 낭비한다면 점점 더 메말라 가고 황폐해져 몸은 몸대로 병들어가고 정신은 공허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삶은 상위단계에 있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차원들이 모두 육적인 차원을 위해 희생당하는 것이고 육적인 것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로서 이는 인간이 총체적으로 병들어 가는 것이다. 정신적인 차원은 영적인 것을 지향해야 한다. 즉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지성은 단순히 자신의 어떤 지식이나 학문을 쌓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차원 즉 영적인 차원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지성을 주신 것은 당신을 알고 당신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지성은 하느님을 지향해야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 사용되어져야 한다. 하느님을 외면한 단순한 지적인 욕망은 자칫 잘못하면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하느님을 배제하기 쉬우며 자신이 하느님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오만함과 교만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며 지식의 남용이다. 영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는 그 어떤 정신적인 차원의 사용은 인간을 병들게 만들며 또 다른 우상을 만들 수 있다. 하느님은 세례성사 때에 우리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주셨다. 우리는 성령이 거처하시는 성전이다. 즉 성령 즉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존재이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하느님이 계신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은 모두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눈동자가 당신을 찾고 있나이다, 오 주님이여."(시편104)라고 노래한대로 즉 하느님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성바오로도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로마10,31)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에서 "세상에서 난 사람은 세상에 속하고 세상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는 말씀에서 "세상에서 난 사람"이란 육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고 세상일에만 매여 있는 사람으로서 하향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라는 말씀은 가장 높은 차원인 영적인 것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세상에서 난 사람"과 "위에서 오시는 분"과는 분명히 다르다. 마치 기차 레일이 평행으로 달리지만 한번도 하나로 맞닿지 않듯이 세상에서 난 사람의 삶과 위에서 오시는 분과의 삶은 서로 일치하지 않고 늘 서로 다른 길을 간다. 따라서 세상에서 난 사람이 영적인 차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육적인 차원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상위 단계로 진입할 수 없으며 하느님을 닮을 수 없다.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만이 육적인 차원의 삶을 포기할 수 있고 하느님을 닮을 수 있다. 즉 영성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 것에서 헤어날 수 없으며 상위 단계로 한 단계씩 올라 갈 수 없다.
세상 것을 얻는다는 것은 모두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반대로 영적인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무엇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 오히려 가진 것을 버리고 빈 가슴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도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마태 5,3)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위에서 주시는 은혜란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즉 인간은 세상 것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시는 은혜 즉 말씀을 받아들이므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 즉 빈 가슴을 가득 채워 질 수 있고, 가난한 마음을 부유하게 될 수 있고, 공허한 마음을 넉넉한 마음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드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라는 말씀은 아드님 즉 예수님과 일치한다는 것이며 예수님과 일치한다는 말은 말씀 안에 거처한다는 말이며 말씀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말씀을 통하여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위에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되새김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나와 세상 것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말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말씀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받아들일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위에서 오시는 분이 내려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출처] 2011년 5월 5일 부활 제2주간 목요일|작성자 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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