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의 마지막 단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면서
죽음이라는 한계와 부딪히게 됩니다.
이 한계를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롭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이 한계를 인정하면
매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한계는 일종의 초대입니다.
인간적인 한계를 수용하게 하고
동시에 신이 선물하는 무한함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보다 강렬하게 살아가라는 초대이며
삶의 취향을 예감하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모든 것에 관여하게 됩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영원의 무한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오늘의 묵상 :
죽기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가?
한번쯤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과제가 아닌가?
이 세상의 삶이
하루 밤의 꿈이 아닌가.
또는 이 세상의 삶은 소풍과도 같다.
그러면서 아우구스트 성인은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배고파 잠이든 이가 꿈속에서 진수성찬을
받고 어찌나 좋던지 마음껏 배불리 먹었으나,
잠에서 깨어 보니 배고품은 이루말할 수 없었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살게 하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하기에 이 세상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죽음을 맞는 순간에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1코린15,51-52)
어떤 모임이든지 성실히 자주 모여서
친구와 친척 그리고 이웃들과 좋은 관계로 헤여져야
합니다.
"어떤 이들이 습관적으로 그러듯이 우리의 모임을
소홀히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합시다. 여러분도 보다
시피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으니 더욱더 그렇게
합시다."(히브10,25)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재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직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직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1코린 15,42-44)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이 세상의 삶을 아름답게 마치도록 하여,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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