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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을 찬미하라" - 5.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08 조회수446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8 부활 제3주일

사도2,14.22ㄴ-33 1베드1,17-21 루카24,13-35

 

 

 

 

 

 

"주님을 찬미하라"

 

 

 

 

참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 성모님의 달 5월입니다.

 

계속되는 부활 축제에 저절로 하느님 찬미입니다.

찬미의 달, 은총의 달인 5월이 참 깊게 느껴집니다.

 

어느 수사님이 전해 준 말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물을 모아 바다를 만들었고 은총을 모아 성모님을 만들었다.”

 

이래서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야 기뻐하소서.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하며 성모송을 노래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바다의 깊이요 성모님 은총의 깊이입니다.

넓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이 아니라 깊이에서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현대인의 위기는 바로 깊이의 상실에서 기인입니다.

신록 짙어 가는 5월의 산이 점점 깊이를 더해 갑니다.

몇 주 전 인용했던 ‘저 산의 깊이는 어디쯤 일까?’시를 다시 나눕니다.

 

 

“저 산의 깊이는 어디쯤일까?

 

각양각색

온갖 초목들을

꽃들을

품에 안은 산!

 

저 산의 깊이는 어디쯤일까?

 

저 산 같은

사람이

공동체가

그립다

 

 

5월의 불암산을 바라볼 때 마다 저절로 나오는 시입니다.

산의 깊이가 상징하는 바, 하느님의 깊이요 사랑의 깊이입니다.

살아갈수록 하느님을 닮아 우리의 삶도, 사랑도, 믿음도, 희망도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의 삶을 깊게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깊게 합니다.

마음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삶의 허무에 대한 유일한 처방도 하느님 찬미 하나뿐입니다.

하느님 찬미가 허무의 먹장구름을 날려

빛나는 하느님 사랑의 현존 안에 살게 합니다.

주님 부활시기와 겹치는 5월은 말 그대로 은총의 달이자 찬미의 달입니다.

성모님을,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알렐루야의 달입니다.

초점은 언제나 하느님께 모아지며 저

절로 솟아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삶을 요약한다면 ‘찬미와 감사’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축복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사람들은 결코 축복 받지 못합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우리의 운명을 바꾸며 삶을 깊게 합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계속되는 부활시기 아침성무일도 초대송도

바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하느님 찬미에 초점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열한 사도와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설교하는 베드로의 주제도

온통 하느님 자랑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 지신 그분께서는…’

모두가 하느님이 주어입니다.

하느님이 계시어 부활한 예수님도 계십니다.

온통 하느님 자랑으로 가득한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이런 예수님을 부활시킨 하느님께

사의 마음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알렐루야 우리의 하느님 찬미입니다.

말 그대로 5월은 하느님 찬미의 알렐루야 달이요

온 누리의 신록의 초목들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하느님 찬미와 더불어 깊어지는 5월의 자연이요 우리의 삶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우리의 눈을 열어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합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이 있어도 마음의 눈이 닫혀 있으면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무덤 곁에서 울던 마리아 막달레나,

처음에 눈물이 앞을 가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들 역시

너무 침통한 마음에 낙심으로 눈이 가려져

함께 동행 하던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복음의 묘사를 들어보십시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대로 우리 삶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도반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눈이 가려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해

주님 혼자 짝 사랑하도록 만든 경우는 얼마나 많겠는지요.

평생 동행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 마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써늘해 집니다.

멀리 있는 주님이 아니라

바로 옆 형제들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눈만 열리면 형제들 하나하나가

주님의 현존일 텐 데 우리의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합니다.

순간만이라도 이런 체험을 하면

형제들을 대하는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대목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부활하신 주님 먼저 친히 개입하십니다.

바로 우리가 삶의 여정 중 지쳐있거나

좌절의 어둠 중에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 역시 먼저 우리에게 개입하십니다.

형제들을 통해서 개입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형제들 안에 현존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 낙심 중에 있을 때 오늘 부활하신 주님처럼,

주님 부활의 현존이 되어 슬며시 개입한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비상한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함께하는 형제들을 통해 형제들 안에 현존하는 주님 체험입니다.

때로 곤경 중에 있을 때

도움을 주신 분을 통해서 주님을 체험하는 우리들입니다.

환대와 더불어 찬미할 때 눈이 열려 현존하신 주님의 체험입니다.

오늘 복음도 이런 진리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졌다.’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환대했고

이에 응답해 주님은 제자들의 눈을 열어주시어 당신을 뵙게 했습니다.

주님은 역시 우리의 환대에 응답하여

우리와 함께 찬미의 미사를 봉헌하시며

당신의 성체를 모실 때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어

부활한 당신을 알아보게 합니다.

눈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역시 형제들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바로 이게 엠마오 도상에서 겪었던 신비체험이자

우리가 미사 중 겪는 신비체험입니다.

주님을 알아보는 순간 주님은 그들에게 사라집니다.

바로 이런 순간의 신비체험이

영원히 살아있는 강렬한 생생한 추억이 되고

내적 힘의 원천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의식하든 않든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도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바로 이게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서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 주님께서 성경말씀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하십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의 고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성경말씀 묵상이나 강론 중,

성체를 받아 모실 때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는 감동의 체험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의 체험입니다.

마침 어제 어느 수사님이 들려 준 유머가 참 신선했습니다.

아랫집 수녀님의 작년 쓰다 남은 부활초가 있으면 달라는 청에

남은 초는 양초 만드는 집에 보냈다 하니

그 수녀님께서 ‘참 짜다.’ 말했다 합니다.

이에 대한 수사님의 유머가 참 일품입니다.

 

“수녀님 자체가 부활초 인데 무슨 부활초가 필요합니까?”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체험이

우리 모두 살아있는 주님의 부활초가 되어 살게 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는 세상의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그리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어 영광을 주시어,

우리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를 당신 생명과 빛으로,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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