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율법의 행위 / 은총의 행위 [다시 해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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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1-05-11 | 조회수32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죄의 힘에 다시 갇혀 (두려워) 은총의 힘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 예언자 >
'예언자’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prophetes인데, 이는 예언자의 기본성격을 암시하는 말로 다른 이를 위하여(pro) 말하는(phemi) 자라는 뜻이 된다. 히브리어는 능동형으로 ‘하느님의 대변자’를 가리킬 사람을 가리킬 가능성도 있으나, 그보다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느 경우에나 중심 개념은 신적(神的)교제를 나타내는 것이며, 실제 역사를 통해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예언은 대개 하느님의 힘이나 성령의 힘에 의거하였다.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만을 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일을 과거와 연관시켜 얘기하는 등 과거,현재,미래를 다 예언했고, 심판에 대한 예언과 구원에 대한 예언을 동시에 했으며, 하느님을 대리해서 말한다. 하느님은 그의 말씀을 예언자에게 전한다. 하느님의 말씀의 영감적인 전달자였다. 참된 예언자들은 결코 '잘못된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다. 사도직과 예언직은 다르다. 요하나(요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 주셨다"를 그대로 살기 때문에 교회와 종교에 대해 하느님의 말씀을 깊은 영감으로 알린다. 이는 하느님의 섭리이시다. 따라서 언제나 불충한 인간들에 의해 환영 받을 수 없다. 다만 아버지께서 정하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받아 들인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 예언자 인간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 하느님을 보고 찾기 때문이다. <가톨릭대사전>
< 율법교사와 지식의 열쇠 >
행위로 의롭게 됩니까. 세상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혹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하여라, 또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지키지 못하고 그 반대로 한 적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지말라' 규정한 율법이 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교회의 가르침'이 죄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로마서 3, 20>
율법이 잘못입니까. 아니면 실천하지 않은 것이 잘못입니까. 남들에게는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자신을 희생해 가며 자신에게 대하듯 남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기 자신에게는 가르치지 못합니까. 행위로 의롭게 됩니까. 아닙니다. 누가 율법주의자, 율법교사 입니까.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자가 바로 그 자가 아닙니까. 행위로 의롭게 된다면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못하고 남들을 가르치는 이가 바로 율법 교사인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로마서 3, 21 - 27>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죄입니까. '교회의 가르침'이 율법입니까 '교회의 가르침'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누가 율법주의자, 바리사이, 율법 교사 입니까.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자가 바로 그 자입니다.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다 모두 위선자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교회의 가르침이 죄를 만듭니까.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죄를 만듭니까. 아닙니다. 율법이든, 교회의 가르침이든, 사랑해야 한다는 교설이든 그것은 오직 '무엇이' 죄가 되는지 혹은 '무엇이' 위선이 되는지 등을 밝혀주며 '위선이 위선이 되게 하는 것' 혹은 '죄가 죄되게 하는 것'입니다
위선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다면, 죄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다면 위선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죄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위선은 설치게 되고 죄도 따라서 설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5, 13>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다면 나는 죄를 몰랐을 것입니다. 율법에서 “탐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는 탐욕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로마서 7, 7>
그러고 보면 율법이 죄를 불렀습니까. 율법이 위선을 불렀습니까. 교회의 가르침이 죄를 불렀습니까. 교회의 가르침이 위선을 불렀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사람 그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없애야 합니까. 교회의 가르침을 없애야 합니까.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까.
"전에는 내가 율법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이끌어야 하는 계명이 나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죄가 계명을 빌미로 그것으로 나를 죽인 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합니다.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선한 것이 나에게는 죽음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가 그 선한 것을 통하여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죄가 죄로 드러나게, 죄가 계명을 통하여 철저히 죄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7, 9 - 21>
율법이 들어와 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죄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습니다. 예를들면 태어나자마자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전혀 없는 장애 아기들을, 자식을 키워준 쓸모없는 어버이들을 버렸서는 안 되는 가르침이 있지만 길거리에 내버리는 죄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죄악들 속에서도 그런 아기들과 어버이들을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의 덕분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거두어 들이고 보살피는 사람들과 사회적 보장제도의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온갖 죄악들 속에서도 구원하고자 하느님의 생명과 평화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은총으로 내려졌습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자신을 종으로 넘겨 순종하면 여러분이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라는 사실을 모릅니까 여러분은 죽음으로 이끄는 죄의 종이 되거나 의로움으로 이끄는 순종의 종이 되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전에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전해 받은 표준 가르침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 15 - 17>
결론적으로 가르침이 위선을 불렀습니까. 아닙니다. 바로 사람 그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없애야 합니까. 교회의 가르침을 없애야 합니까.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죄에 얽매이지 말고 은총의 힘을 입어 모두가 성화(거룩화)에 이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럽게 여기는 것들을 행하여 무슨 소득을 거두었습니까 그러한 것들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 21 - 23>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라티아서 2, 16>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운다면 나 자신이 범법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갈라티아서 2, 18>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갈라티아서 2, 21> "죄가 여러분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총 아래 있습니다." <로마서 6, 14>
하느님을 만나려면 자신의 중심 속으로 들어 가야 한다. 인간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지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현존이 인간 각자의 내면에 머무시고 거니시고 사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 백성'의 참 진리이다.
하느님의 성전에 우상이 어떻게 어울리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사이를 거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고린토2서6장>
2010년1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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