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월 13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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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5-13 | 조회수988 | 추천수20 | 반대(0) 신고 |
5월 13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사도행전 9장 1-20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은총의 바닥체험>
투병중인 환우들로 빼곡한 병실을 드나들 때 마다 느끼는 바입니다만, 내가 내 발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큰 은총인지요. 얼마나 많은 환우들이 ‘언제 한번 그 환상적인 바닷가를 거닐어봐야 할텐데, 그 황홀한 꽃길을 걸어 봐야 할텐데, 하는 꿈을 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바오로 사도 역시 비슷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겪었던 ‘사흘간의 은총의 바닥체험’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이 좁았습니다. 왕성한 체력과 활기찬 젊음을 바탕으로 여기저기 안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바오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이에 역행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전국을 훑었습니다.
큰 오류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그리스도교 박해의 선봉에 서있던 바오로 사도에게 드디어 예수님께서 바짝 다가서십니다. 제대로 한방 먹이십니다. 바오로 사도 개인적인 입장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심연의 바닥’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는 예수님의 음성과 함께 바오로 사도의 인생은 급격한 ‘수직낙하’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던 시력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단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늘 당당하게 활보하던 바오로 사도였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겨우 걸음을 떼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었던지 바오로 사도는 사흘 동안이나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의 손에 의지해서 사흘 길을 걸어 다마스쿠스까지 걸어가게 됩니다. 어찌 보면 그 사흘은 바오로 사도 일생에서 가장 춥고 배고픈 사흘, 가장 끔찍하고 혹독한 사흘이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그 사흘은 바오로 사도 생애에서 가장 은혜로운 사흘, 자신의 삶을 180도 전환시키는 은총의 사흘이었습니다.
그 사흘 동안 바오로 사도는 식음을 전폐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을 했을 것입니다. 사흘간의 대 피정을 통해 그간 자신이 얼마나 그릇되게 살아왔는지,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윽고 완전한 새사람, 온전한 예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비워낸 바오로 사도, 완전한 바닥까지 내려간 바오로 사도의 마음 안에 드디어 하느님의 성령께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십니다.
드디어 은총의 순간이 온 것입니다. 그 순간은 바오로 사도가 하느님 이외 그 어떤 것도 자신을 든든하게 받쳐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은 하느님 외에 더 이상 길이 없고, 그분만이 자신의 원천이자, 마침, 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 옛날 바오로 사도가 겪었던 ‘은총의 바닥 체험’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체험을 통해 온전한 당신의 자녀로 거듭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인생의 전망,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하게 행복한 새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은총의 바닥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놀라운 하느님의 은총이 뒤따르는데, 그것은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비어있는 데서 충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서쪽 하늘을 불게 물들이며 떠나가는 석양에서도 아침노을의 서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죽음에서도 생명을 바라보게 합니다. 복종에서 자유를 느끼게 합니다. 바닥에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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