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문이요 길이자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5.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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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5-15 | 조회수38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15 부활 제4주일 사도2,14ㄱ.36-41 1베드2,20ㄴ-25 요한10,1-10
"문이요 길이자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제가 외출했다가 수도원에 귀원할 때, 기도 시간에 여유가 있는 한은 절대로 수도원 정문 안에는 택시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정문 밖에서 내린 후 활짝 열린 수도원 정문을 통과하여 불암산과 길옆의 배 밭을 보면서 길을 걷는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입니다. 겨울철에는 회색빛 죽음의 섬 같던 수도원 주변의 산야가 요즘은 온통 생명으로 빛나는 신록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런 절경을 택시타고 오느라 놓지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님과의 한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면담성사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내면의 긴 이야기를 마친 후 결론 같은 자매님의 말씀에 즉시 응답했습니다.
“기적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매님을 잘 지켜주셨습니다. 이제 어둠의 터널은 끝났습니다. 길을 잃다니요. 길은 바로 지금 여기 자매님 앞에 있습니다. 눈 만 열리면 누구나 지금 여기서 발견하는 내 길입니다.”
오늘 저는 착한 목자 주일이라 불리는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에 문과 길과 목자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주님이자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님이 우리의 문이자 길이자 목자입니다. 하여 강론 제목도 ‘문이요 길이자 목자인 예수 그리스도님’입니다.
어쩌면 이리도 우리 수도원의 환경과 잘 맞는지요. 오늘 새벽 수도원 정문에서 성전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묵상하며 깨달은 사실입니다.
수도원 대문을 활짝 열고 통과한 후 길을 걸어 목자이신 주님의 집인 성전에 들어오니 그대로 문, 길, 목자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문, 길, 목자 이 순서대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문에 대한 묵상이 참 풍부합니다. 수도원 정문을 예로 듭니다. 수도원 정문이 꽉 닫혀 수도원 출입이 금지될 때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출구 없는 온통 벽뿐인 건물에 마음의 방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좌우사방 닫혀있는 문에다 온통 벽일 때 불통에 절망입니다.
오늘 많은 이들이 겪는 현실입니다. 보이는 문이 상징하는 바는 보이지 않는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랑의 문, 희망의 문, 구원의 문입니다. 문이라고 다 문입니까? 파멸과 죽음에 이르는 거짓 문도 수없이 많습니다. 다 닫혀있어도 주님의 문만 발견하면 삽니다.
사실 눈 만 열리면 지금 여기 하늘 향해 활짝 열린 하늘 문, 주님을 발견합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이 베텔에서 꿈 중에 주님을 만난 후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깨달음의 고백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이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하늘의 문이로구나!”
눈 만 열리면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임을 깨닫습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복음 말씀인지요. 우리 주님은 벽이 없어 온통 문뿐이시기에 ‘나는 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언제나 활짝 열린 문이신 주님 계시기에 비로소 원활한 소통에 영육의 건강입니다.
수도원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신록의 바다가 펼쳐지듯 주님의 문을 들어설 때 하늘 신비와 생명으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정말 마음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요 이런 보이지 않는 도둑들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립니다만 우리 주님은 우리가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오십니다.
이 주님의 문을 드나들 때 사랑과 생명 넘치는 삶입니다. 우리 역시 문이신 주님을 닮아 이웃에 활짝 열린 사랑의 문, 희망의 문, 구원의 문이 되어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게 우리에 대한 주님의 바램입니다. 절대로 멀리 있는 문이 아닙니다. 눈 만 열리면 활짝 열린 주님의 문, 하늘의 문을 발견합니다.
활짝 열린 수도원 대문처럼! 우리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갈 수 없다고 천명하셨습니다. 주님은 바로 하느님께 이르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을 잃어. 이 길이 막혀 방황이요 좌절이요 무기력한 삶입니다. 삶의 의미를, 삶의 목표를,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바로 길을, 주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이라고 하여 다 길이 아닙니다. 길눈이 안 좋아 잘못된 길에 들어서 시간과 정력을 아깝게 탕진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파멸에 이르는 길도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지옥에 이르는 길은 곱게 포장되어 있다는 말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역시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눈만 열리면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이신 주님을 지금 여기서 발견합니다.
바로 이게 구원입니다. 이 좋은 길 발견하면 절대로 죄악의 길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길 있다고 유혹해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바로 수도원 정문을 통과하면서 신록의 바다 한 복판 여기 수도원 성전까지 활짝 트인 길이 바로 진리의 길이자 생명의 길인 주님의 길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사도 베드로의 설교에 감동되어 세례를 받은 신자가 삼천 명 가량이 늘었다는 데 바로 삼천 명의 사람들은 주님의 길을 찾았음을 의미합니다.
한 번 찾았다 하여 늘 그대로의 주님이 길이 아닙니다. 요즘 시골에 가면 사람이 다니지 않아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사라진 오솔길이 참 많습니다. 냉담으로 탐욕과 나태의 잡초가 우거지면 주님의 길도 사라진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하여 사도 베드로는 회개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이래야 선명해지는 주님의 길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바치는 성무일도와 미사, 그리고 성경독서가 바로 주님의 길을 닦는 일이자 마음의 길눈을 밝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우리 모두를 향한 다음의 간곡한 당부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 하십시오.”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는 길은 단 하나, 하느님께 이르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신 주님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걸으며 주님을 닮아 갈 때, 우리 또한 길 잃은 이웃에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게 우리에 대한 주님의 바램입니다.
우리의 목자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방금 우리는 흥겹게 화답송 후렴을 노래했습니다. 제 묘비명을 정하라면 두말 할 것 없이 이 시편 말씀을 택하겠습니다. 주님의 문을 상징하는 수도원 정문을 통해 역시 주님의 길을 상징하는 수도원 길을 걸어 주님의 집인 성전에서 이 거룩한 미사 중 우리의 착한 목자 주님을 만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착한 목자의 인도에 따라 거룩한 생명의 미사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목자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부단히 기도하며 말씀 안에 살 때 마음의 귀가 밝아져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 마음의 귀가 어두워져 식별력이 부족하면 악마의 목소리도 주님의 목소리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착각으로 마음의 귀가 어두워 악마의 목소리에 넘어가 낭패 본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을 만납니다.
풍성한 생명을 체험하니 바로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을 따르면서 목자를 닮아 갑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선을 행하다가 겪는 고난은 그대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바로 이렇게 살라고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사도 베드로에게 들은 착한 목자 주님을 자랑합니다.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이 없었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 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 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우리의 병이 나았습니다.”
바로 이 착한 목자 주님께서 우리를 생명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이런 착한 목자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이요 치유되는 영육의 병과 상처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활짝 열린 주님의 문이요, 환히 트인 주님의 길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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