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미사 중 사도행전의 말씀을 듣는데 유독
“유다인에게만 전하였다.”는 말씀이 제 귀에 꽂혔습니다.
“그 무렵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이 얘기 다음 바르나바가 사울을 타루수스에서 데리고 오고
그들은 거기서 1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함으로써
처음으로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는 얘기를
사도행전은 계속해서 전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드디어 바르나바와 사울을 파견합니다.
박해에 의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즉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그리스도교 전파가 이루어졌다면
이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처음으로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선교사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파견하는 것이고,
이제 유다인들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파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역사 안에서
성령의 대단한 작용을 느낍니다.
교회란 교우들의 모임이란 뜻이지만
흩어짐이 있어야 새로운 모임,
새로운 교회가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흩어지지 않았으면,
그래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만 머물렀으면
안티오키아 교회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주님의 교회는 영원히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유대교로 남았을 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언젠가 헤어지기 마련이기도 하지만
헤어지고 흩어져야
새로운 만남과 모임이 있다는 것이지요.
많은 성공 신화들을 보면
실패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면
평생 봉급쟁이였을 것입니다.
회사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그 회사를 평생 운영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의 실패,
예루살렘 유다 교회의 흩어짐을 통하여
안티오키아 그리스도 교회를 시작하신 성령께서는
이제 이방인 안에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시기 위하여
안티오키아 교회에 사도의 파견을 명하십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고인 물이 썩지 않으려면
새로운 물이 흘러들어오기도 해야지만
물이 흘러가기도 해야 하듯이
주님의 교회는 이제 지역을 넘고 민족을 넘어서
새로운 땅, 새로운 민족들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지난주일, 교회는 첫 번째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반포 120주년을 기념하였습니다.
이 회칙은 칼 마르크스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한 교회가
이 새로운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쇄신의 필요성을 천명한 것입니다.
제 2 바티칸 공의회 또한
쇄신과 적응의 공의회라고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듯 늘 위기를
새로운 사태로 만드십니다.
위기가 위험스러운 기회,
즉 위험스럽기는 하지만 새로운 기회이듯이
성령께서는 교회가 지역과 자기 체제 안에 안주하지 않도록
교회에 늘 새로운 도전을 주시고 응답하게 하십니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