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진묵상 - 열두번째 도전 | |||
---|---|---|---|---|
작성자이순의 | 작성일2011-05-20 | 조회수476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사진묵상 - 열두번째 도전
이순의
짝꿍이 홀로 대관령에 머물기 시작한 지도
어언 12년째 입니다
그 첫 파종의 첫줄이 시작되었습니다.
열두번째 봄에는 또 유난히도 비가 많고
일기변화를 예측할 수 없어서
파종하러 왔다가 돌아간지가 몇번째 인지 모릅니다.
우여곡절은 많았고
시험은 인내를 요구했으나
그래도 그 파종의 첫줄에
짝꿍이 올라타서 관리감독하고 있습니다.
12년의 경험과 기술은
짝꿍의 머리와 가슴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짝꿍의 판단에 따라
올해는 저렇게 이양기 파종을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권은 짝꿍만의 기술입니다.
손으로 일일히 한 구멍 한 구멍 심기도 하고
손기계로 두 줄씩 밀어서 심기도 하고
작년에는 트렉타로 쭉 밀어붙이는 식으로
첫 파종을 했습니다.
아마도
올 봄에는 비가 많아서
저렇게 결정을 하지 않았는지
저는 그냥 짝꿍의 결정을 짐작해 볼 뿐입니다.
대관령쪽 진고개 정상에는 아직도
산색이 잿빛입니다.
양지바른데만 이제야 어린 초록이 손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집의 은행잎은 이미 어른 손이 되어 있을테지만
여기는 이제야
오므린 조막손을 펴려합니다.
모자 쓰고 서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짝꿍입니다.
모든 결정은 짝꿍의 마음 속에서 나옵니다.
이제는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마음 뿐입니다.
첫파종하는 밭의 선택도 짝꿍이 계획한 대로 합니다.
작년 가을에
엄청난 퇴비를 넣고 쟁기질까지 해 놓은 밭입니다.
아무래도
구제역으로 차량통제가 시작되고
퇴비방출이 불가능한 터에
봄에서야 구제역 해제로 퇴비가 방출되고 밭 갈은
다른 밭자리들은
좀 더 뒤로 물러났습니다.
지금
날씨가 포근해지고 있으니
흙 속에서 잘 발효되면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첫파종이라도
하루 먼저 심은 자리와
하루 후에 심은 자리에는
저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첫파종의 전체면적의 발아상태는 성공입니다.
예쁩니다.
제가 송곳으로 파 주지 않았는데
제가 칼끝으로 쪼개주지 않았는데
저렇게 이쁜 녀석들은 제 할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이 저 이쁜녀석들을 기분좋게 할 것이고
그 보람은 저 이쁜녀석들의 몫을 크게 할 것입니다.
첫파종의 보람에 대하여 알려드리려고 성당에 갔습니다.
새로지은 성당의 종탑에는 저렇게 큰 스테인레스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저 십자가는 아주 오래 된 50여 년 전
사진 속의 성당 종탑에도 세워져있습니다.
저 종탑옆으로 긴 쇠줄이 종을달고 내려와있는데요
저는 그 쇠줄을 한 번 당겨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맨날맨날
그 쇠줄 끝의 동그란 손잡이만 만지작거리다 돌아옵니다.
당겼다치고
제 귀에는 이미 성당의 종소리가 들립니다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성당의 마당에도 은행잎은 아직 어린 손입니다.
저 어린 손이 다 자라서 어른 손이 되고
그 어른 손이 노랗게 물들어
성당의 마당에 황금무늬를 놓고도
다 사그라지면
그때서야 저는 서울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시작할 때는 가을이 먼 것 같지만
가을이 되어 돌아보면
또 여름 한 철이 번개 불에 콩을 구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작은 늘 두렵습니다.
장마도 무섭고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내야하는 일은
더 무섭고
밤에는 시장에서
낮에는 대관령에서
인간적 육신의 한계를 넘나들며 이런 일을 해내는 짝꿍의 건강은
더더더더 무섭고
무서운 것이 너무나 많은 봄이고
무서운 것은 많은데
저는 너무 나약해서 또 무섭고
그래서 성당에 갑니다.
성당에 간다고 해서 무서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가서
감실앞에 앉으면
용기!
용기를 얻습니다.
그 힘으로 열두번째의 막이 열렸습니다.
11전 7패 2무 1판정승 1KO!
열두번째 결과에 대하여
저는 또 모릅니다.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주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능력이니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