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4) 성찬례,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
빵을 떼어주는 예수님과 만남… 늘 감동으로 다가와 - 얀 빌덴스의 ‘엠마오로 가는 길의 그리스도와 제자들’. “성체성사는 신앙의 신비이며 동시에 ‘빛의 신비’입니다. 교회가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신자들은 어떤 점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가 겪었던 일을 다시 체험합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4,31).”(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6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4년 성체성사의 해를 맞이하여 특별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을 통해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성찰하도록 초대하셨다. 성체성사의 해에 관한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2004.10.7) 안에는 이러한 관점들이 잘 담겨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걸었던 여정에 비추어 미사 거행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미사에 관한 해설서들이 많지만 이 교서만큼 미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글도 없을 것이다. 앞으로 미사의 이해를 위해 그 구조와 여러 요소에 대해서 살펴보겠지만 사실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미사가 엠마오의 사건처럼 우리의 마음과 눈을 열어주시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사의 역사를 잘 알고 미사의 각 구성 요소에 담긴 의미를 머리와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하게 될 때라야 비로소 우리가 미사에 충만히 참례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미사와 관련된 온갖 서적을 탐독하고 공부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사랑을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미사에는 하느님의 말씀과 빵의 친교로 이루어진 생명의 나눔이 있다. 거기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고 하느님과 인간의 행위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미사는 주님께서 몸소 제정하신 탁월한 방식을 통해 거행되는 신앙의 신비이다. 우리가 이 신비를 책으로 배울 수 있을까? 일상 안에서 주님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분과 나누는 인격적인 만남을 키우지 않고서 미사를 깊이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처럼 미사를 단지 예식이 아니라 놀라운 사건으로 체험하고 싶다면 말이다. 앞서 우리는 성찬례의 기원과 관계된 두 성경 본문, 곧 최후의 만찬과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여정을 통해서 미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미사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 잔을 들고 하느님께 바치신 찬미와 감사의 기도이며 제자들에게 빵과 잔을 나누어 주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성찬례는 예수님의 이 말과 행위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주님의 명을 바로 이행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십자가 사건의 충격으로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기억도 절망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모든 이야기가 끝났다면 성찬례라는 놀라운 선물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 미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에게 밝혀주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친히 최후의 만찬에서 행하셨던 말씀과 행위를 반복하신다.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빵을 떼어 주시는’ 행위는 두 제자의 눈을 열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해 주었다. 이 충만한 친교와 일치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는 어떻게 이 만남을 이끄셨던가?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걷고 대화를 나누시며 그들 마음에 응어리진 절망과 한탄의 이야기를 들으셨다. 그리고 성경을 몸소 풀이하고 설명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하셨다. 이 여정을 따라서 엠마오의 두 제자는 말씀의 빛으로 삶의 의미를 깨닫고, 빵을 쪼갤 때 주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였으며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사도로 변모되었다. 그렇다면 미사란 무엇인가?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 자신을 다른 이들을 위한 빵으로 내어놓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자 다시 우리에게 빵을 떼어주시는 예수님과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움과 새로운 감동을 주는 사건이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영하는 데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그래서 거행되는 신비 앞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 채 일상의 의무를 행하듯 미사에 참례하기도 한다. 너무나 귀에 익어 마치 ‘똑같은 옛 이야기’를 대하듯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탁월한 선물인 성찬례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처럼 우리가 좀 더 겸손하고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 삶의 참된 동반자이신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열어 주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리자. 매 미사 때마다 습관적으로 되풀이 하는 말과 행위 속에 감추어진 본질에 더 닿고 싶은 열망이 우리 마음 안에 샘솟기를 바란다. *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2월 25일, 김기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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