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의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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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민숙 | 작성일2011-05-21 | 조회수37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그림<이석보님의 들꽃>-
이스라엘 백성이 늘 바치는 ‘기도’이자 ‘성가’라고 할 수 있는 시편에는
곳곳에 하느님 얼굴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신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신화적 표현은 있지만 그분의 얼굴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로지 목소리나 천둥과 구름 같은 표징으로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셨습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초월적인 하느님께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으로 들어오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의 얼굴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먹기도 하시고 마시기도 하시며 함께 지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뜬금없이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에게서 유다의 남자, 비범한 나자렛 사람의 얼굴은 보았지만,
그분 삶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온전한 ‘사랑의 얼굴’은 아직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나자렛 사람으로 그려진 초상이 아니라 그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안에 심어 있는
‘하느님의 모상’, 그 참된 ‘사랑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사랑 받는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얼굴을 드러내는 ‘사랑하는 나’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함께 계셔도 주님의 얼굴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주님에 대한 그리움의 목적지는 우리 자신 안에 있습니다. 오로지 사랑을 해야만 그분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201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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