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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길, 집, 일" - 5.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22 조회수413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5.22 부활 제5주일

사도6,1-7 1베드2,4-9 요한14,1-12

 

 

 

 

 

"길, 집, 일"

 

 

 

며칠 전 신문에 난 풍경 사진이 인상적이라

스크랩 하여 집무실 벽에 붙여 놓고 감상합니다.

 

‘시간이 멈춘 듯…

압록수 너머 겨레의 민낯(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을 보다.’ 라는

제하의 압록강서 바라 본 북한의 민둥산 화전의 풍경입니다.

 

마을뒤편 민둥산에는 개인 경작이 허용된 ‘뙈기밭’이 있고,

화전방식의 농사를 위해 불을 놓는 장면이 보이는 사진입니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경이롭게 펼쳐진 뙈기밭은

북한 주민들의 궁핍함 삶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진을 붙여놓고 잠시 보는 순간,

삶은 감상이 아니라 현실임을 소스라치게 깨달았습니다.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는 말도 있지만,

멀리서 사진을 보고 감상하는 것과

실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과는 하늘과 땅 차이일 것입니다.

 

배 밭을 거닐며 바라보는 것이 낭만이라면

배 밭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사진에서 제가 주목한 것은

사람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사는 집과

사람이 일하는 일터인 뙈기밭이었습니다.

 

중요한 것들은 대개 한 글자라는 데 길, 집, 일이 그러합니다.

길과 집과 일을 떼어놓고는 사람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하여 오늘 강론 주제는 ‘길, 집, 일’입니다.

 

 

영적 존재인 사람입니다.

보이는 길도 좋아야(중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길은 더 좋아야(중요)합니다.

보이는 길의 현실만으로는 너무 힘든 삶입니다.

하늘 향해 난 영혼의 숨통 같은 하늘 길을 찾아야 삽니다.

보이는 길이 상징하는바 보이지 않는 하늘 길입니다.

길을 통해 내 사는 집에 이르듯 하늘 길을 통해 하느님의 집에 이릅니다.

 

북한의 민둥산을 배경한 풍경의 삶에서 빠진 것이 바로 하느님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보이는 길 넘어 보이지 않는 하늘 길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을 한 복판에 교회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공허해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서는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입니다.

부단히 삶의 의미를 본향을 찾는 사람입니다.

하여 길을 찾는 구도자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길 중의 길이 주님의 길입니다.

모든 길이 상징하는바 하느님께 이르는 주님의 길입니다.

이 길을 찾으면 구원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주님의 길을 찾으면 다른 길들은 줄줄이 열립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느 길 위에 있습니까?

길을 잃어, 길이 막혀, 길을 찾아 방황하지는 않습니까?

길을 잃었다는 것은

바로 희망을, 삶의 방향을, 삶의 의미를 잃었다는 뜻입니다.

고맙게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이 바로 구원의 길임을 보여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바로 이 길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 길을 찾으라고 상징처럼 주어진 온갖 보이는 길들입니다.

 

보이는 길눈은 좋아 잘 다니는 데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길눈이 안 좋아

세상 유혹에 빠져 주님의 길을 잃어버릴 때 좌절이요 타락이요 파멸입니다.

그러니 곳곳에 널려있는

파멸에 이르는 잘 포장된 죽음의 길, 거짓의 길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이르는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은 주 예수님 하나뿐이며

이 길을 잘 가기 위해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의 실천입니다.

 

 

하느님이 없는 집은 영혼이 없는 집과 같아 죽은 집입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실 때 여기 수도원처럼

생명과 빛이 충만한 하느님의 집이 됩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영혼이 없는 집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하여 기쁨과 평화가 없고 불화와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저 멀리 있는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지금 몸담고 있는 내 공동체가 아버지의 집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어 생명과 진리의 길을 걸을 때

지금 여기서 실현되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바로 아버지의 집에서

우리 모두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한 가족이 되어 드리는 주일미사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생명과 빛이 넘치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아버지의 집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열 두 사도와 제자들의 공동체를 통해

그대로 실현되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이런 적재적소의 역할 분담 시스템이

다양성의 일치를 이루게 하니

과연 아버지의 집에 걸 맞는 하늘나라의 시스템입니다.

 

사탄의 시스템이 횡행하는,

끊임없이 자살자들 속출하는 이 살벌한 세상에서

믿는 이들은 대조사회로서의

이런 하늘나라의 시스템을,

아버지의 집을 살아내고 또 집 잃은 이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중심으로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그대로 받아 드려주며

각자의 자리에 충실할 때 공존공생의 공동체, 아버지의 집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간곡한 당부 말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있는 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입니다.

  여러분도 살아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우리 모두 살아있는 돌이 되어

모퉁이의 머릿돌인 주님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성령 충만한 영적 집이 바로 아버지의 집인 이 공동체입니다.

 

하여 우리는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의 아버지의 집, 공동체를 이루어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길)-가정(집)-직장(일)의 삼각형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북한의 민둥산 집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뙈기밭이

바로 엄중한 일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하셨고,

불가의 백장선사 역시

하루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청규도 제정했습니다.

 

‘하느님의 집’이었듯이

‘하느님의 일’입니다.

 

하느님이 빠진 일 역시

영혼 없는 일과 같아 활동주의에 중독되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살기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사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일에 영광 받으소서.

바로 분도회의 모토가 일의 영성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느님의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일입니다.

 

심지어 먹는 것도 일이라 하여 식사(食事)라 부릅니다.

 

기도 역시 일 중의 으뜸이라 하여 하느님의 일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으니 기도를 제일 앞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 분도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읽고 일하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할 때

그 모든 일은 하느님의 일이 되고 놀라운 축복이 뒤따릅니다.

 

주님의 분명한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하나 되신 주님께서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이 미사은총으로 계속 힘을 주시기에

주님이 하신 일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길을 통해 집에 이르고

집을 중심으로 하여 안팎의 일을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 누구도 길-집-일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글자마다 하느님이 붙어

하느님의 길,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일이 되어야

제대로 된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이 복된 미사시간,

길이신 주님을 통해

아버지의 집에 들어와

정성껏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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