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살아계신 하느님" - 5.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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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5-23 | 조회수428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5.23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사도14,5-18 요한14,21-26
"살아계신 하느님"
오늘은 ‘살아계신 하느님’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방금 입당성가 시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 했는데 우리 수도승들 역시 하느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으로 먹고 사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기도는 물론 하느님에 대해서도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되어야 하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할수록 또렷해지는 ‘사람’에 대한 정체성입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바오로, 바르나바 역시 자신을 신들로 알아 섬기려는 리스트라 사람들에게 자신이 인간임을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너무나 자명한 이런 자각이 겸손의 기초입니다.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 헛된 것들의 우상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는지요. ‘헛된 것들’과 ‘살아계신 하느님’이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살아계신 하느님 체험이 세상의 헛된 것들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롭게 합니다. 이런 하느님 체험은 비상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신비가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하느님체험입니다. 온통 신록의 생명으로 가득한 세상은 그대로 하느님으로 꽉 찬 세상임을 보여줍니다.
생명과 빛의 하느님이라 고백합니다. 진선미의 하느님이라 고백합니다. 신망애의 하느님이라 고백합니다. 결국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라는 고백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신비가일 수뿐이 없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사는 우리들, 하느님 안에서도 여전히 목말라 하느님을 찾는 우리들 바로 이게 우리 인간의 역설입니다.
“하느님은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기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믿음이 없어도 겸손한 사람들이라면 즉시 공감할 것입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평범한 일상 곳곳에서 하느님 체험입니다. 이런 하느님 체험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감사와 찬미의 미사와 성무일도입니다.
또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우리의 영적감각을 깨어있게 하여 살아계신 하느님 체험을 용이하게 합니다. 새삼 찬미와 감사의 미사와 성무일도의 끊임없는 영성수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영성수련의 소홀로 영적감각 무디어져 마음의 눈과 귀가 어두워지면 하느님 체험은 힘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이요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고 다스리시나이다.’ 고백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은 사랑뿐입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사람을 받게 되고 주님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어 다시 사랑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결코 감상적인 사랑, 말로만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검증되는 주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을 체험하게 되여 생명 충만한 자유로운 삶임을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생명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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