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주는 것'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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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복순 | 작성일2011-05-24 | 조회수44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내가 주는 것> (요한 14, 27-31) -유광수 신부 -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삶이 있고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삶이 있다. 세상이 이끌어 가는 힘이 있고 예수님이 이끌어 가는 힘이 있다. 세상이 주는 것으로 영위되어 가는 세계가 있고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이루워지고 있는 세계가 있다.
육과 영을 지니고 있는 인간은 이 두 가지 세력 속에서 힘겹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이다. 육이 영이 될 수 없고 영이 육이 될 수 없다. 영과 육은 분명히 구분되어 있고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아갈 것이고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갈 것이다.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것을 더 얻기 위해 세상 일에 관심을 갖겠지만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기 위해 예수님이 주는 것에 관심을 쏟을 것이다.
먹는 음식이 다르고 관심을 쏟는 대상이 다르고 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다르고 이르는 목적지가 다르다. 따라서 둘은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보는 것이 다르고, 듣는 것이 다르고, 입는 것이 다르다. 처음에는 잘 표시가 나지 않겠지만 세월이 흐를 수록 둘의 삶은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다.
즉 세상 것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점 점 더 세상 사람이 될 것이고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점 점 더 예수님을 닮아갈 것이다. 육은 육이고 영은 영이라는 것이 더욱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 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 6, 24) 둘을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 인간이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됩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 5-8. 13-14)라고 말씀하셨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 속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반기지만 내 몸 속에는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 다른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법은 나를 사로잡아 내 몸 속에 있는 죄의 법의 종이 되게 합니다.... 나는 과연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법을 따르지만 육체로는 죄의 법을 따르는 인간입니다."(로마 7, 15-18. 21-23. 25)라는 바오로의 고백은 우리가 구구절절 동감하지 않을 수 없고 바로 우리의 고민이요, 하소연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해야할 목표는 거대하다. 이 세상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영적 투쟁을 하면서 사는 것이 수도자의 아름다움이요, 신앙인의 아름다움이다. 어느 정도 도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닦아야할 우리의 삶의 목표가 있다는 것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지 말고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는 평화를 맛보리라. 평화란 성령의 열매이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갈 때 우리에게 맺어지는 열매인 것이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아갈 때에는 한번도 예수님이 주는 평화를 맛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바오로의 말씀이 있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 굳건히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손에는 언제나 믿음의 방패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 방패로 여러분은 악마가 쏘는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또한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십시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서 꾸준히 기도하며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십시오."(에페 6,12-18)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너무나 많은 데 아니 매일 매일 우리가 접하는 것은 세상 것이요, 세상이 주는 것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일이요, 불가능한 일일런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엇이든 가능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겠노라고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 스스로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가겠다고 좁은 문을 택한 사람들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마태 7,13-14)는 것을 알면서도 넓은 문을 버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닌 예수님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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