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월 29일 부활 제6주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
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5-29 | 조회수820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5월 29일 부활 제6주일-요한 14,15-21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청춘의 나이에 세상을 뒤로 하고>
오늘 복음의 주제는 ‘성령’이십니다. 많은 신자 분들 ‘성부’ ‘성자’ 하면 고개를 끄덕거리시지만, ‘성령’ 하면 뭔가 어렵게만 느껴지고, 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십니다.
성령에 대한 체험, 그분 현존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성령의 존재에 대한 성서적 해석, 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만, ‘이거다’ 하는 느낌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령 현존의 체험, 그것은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살펴본다면 우리 매일 삶의 현장 그 안에서 충분히 인식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매일의 삶 한 가운데서 그분은 쉼 없이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청춘의 나이에 세상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수도원 지원자 형제들의 모습,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활동하시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트려버린 ‘죽이고 싶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오히려 도움을 베풀어주는 한 형제의 신앙, 그것은 바로 이 시대 기적입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움직이고 계시다는 표시입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훨씬 우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상대방 밑으로 내려가는 한 이웃의 한없는 겸손,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뚜렷한 징표입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명예나 부, 권위나 이름을 추구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기꺼이 투신하는 한 인생, 그 자체가 성령께서 살아 숨 쉬고 계신다는 확증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셨더라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육화강생, 공생활, 복음 선포, 십자가 죽음, 부활)을 무사히 마치신 예수님께 최종적으로 남게 된 과제는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두고 떠나가실 예수님의 마음이 몹시 안타까우셨겠습니다. 안쓰럽기도 하셨겠지요. 안심이 안 되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첫째가는 협조자 성령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비록 떠나가시지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을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성령은 생명을 우리에게 부여하는 ‘하느님의 숨’, ‘하느님의 입김’, ‘하느님의 바람’, ‘하느님의 힘’이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힘은 또한 오랜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힘이자 예언자들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또한 성령은 지상에서 예수님 삶 전체를 인도해주신 협조자이자 교회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도 진리의 성령께서는 척박한 우리 안에 회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사랑의 기적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인간 안에서도 결정적인 ‘삶의 전환’, 하느님을 향한 ‘방향 전환’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예수님과 일심동체이시며 예수님의 또 다른 현존방식이신 성령이여, 오십시오. 오셔서 이 쓰라린 마음들과 방황하는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협조자이신 성령께 마음을 열어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가치관들, 육의 행실들을 포기하고 보다 본질적 가치들인 성령의 열매를 지속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성령이여, 오십시오. (R)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