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쁨, 희망, 사랑" - 5.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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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5-29 | 조회수37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1.5.29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 생명의 날) 사도8,5-8.14-17 1베드3,15-18 요한14,15-21
"기쁨, 희망, 사랑"
오월 성모성월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 부활 제 6주일은 청소년 주일이자 생명의 날입니다.
신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5월에 부르는 성모님 성가도 참 맑고 향기로워 부를 때 마다 마음 역시 신록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입니다.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찬미하오리다.” “맑은 하늘 오월은 성모님의 달 촛불 들고 모여와서 찬미 드리세. 마리아 우리 어머니 이 맑고 푸른 계절에 하늘같은 주의 사랑 우리에게 주소서.”
아무리 불러도 정답고 따뜻한 성모님 성가입니다. 성모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이 보이고 예수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님의 품이 보입니다.
제가 오월한 달 써놓고 애송하는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옷 있으랴.’ 라는 자작시를 나눕니다.
- 참 부럽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옷 있으랴 인고(忍苦)의 겨울 지낸 나무마다 하느님 친히 입혀주신 생명으로 빛나는 신록(新綠)의 옷들 인고의 세월 견뎌 낸 믿는 영혼마다 하느님 친히 입혀주신 '영원(永遠)한 생명’의 옷들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옷 있으랴
- 하느님이 인고의 겨울 지낸 나무마다 입혀주신 신록의 옷들 보다 세상에 더 아름다운 옷은 없을 것입니다.
‘참 부럽다.’ 라는 생각이 든 것도 생전 처음입니다. 바로 좋으신 주님은 성모님은 물론 믿는 영혼마다 신록으로 빛나는 ‘영원한 생명’의 옷들을 입혀주시고자 이 은혜로운 생명의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세월 흘러 나이 들어도 영혼은 신록으로 빛나는 ‘영원한 청춘’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참 좋은 선물은 기쁨과 희망, 그리고 사랑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도 기쁨, 희망, 사랑이요 모두가 신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긍정적 말들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십시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진리의 영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인 진리의 영이, 활력의 샘이자 기쁨의 샘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샘솟는 힘이, 기쁨이 우리를 치유하고 이웃을 치유합니다.
바로 사마리아 고을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예수님의 제자인 필리포스가 그 모범입니다. 필리포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자 많은 사람에게 붙어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기쁨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기쁨입니다. 마음의 어둠과 슬픔을 일거에 날려 보내고 마음을 빛으로 가득 채우는 기쁨의 선물입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항상 기뻐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기쁨에 이자처럼 따라 붙는 행복이요 저절로 치유되는 영육의 병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희망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느님은 빛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도 빛이지만 희망 역시 빛입니다.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이나 희망으로 빛나는 얼굴을 보면 바로 기쁨이, 희망이 빛임을 실감합니다.
역시 세상이 줄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희망입니다. 세상에 보이는 희망은 언젠가는 환멸로 들어납니다. 세상에 보이는 것들에 희망을 둔다면 우리는 너무나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희망 넘어 그리스도께 희망의 닻을 내려야 늘 신록으로 빛나는 삶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샘솟는 희망이 진정 우리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사도 베드로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희망이 될 때 비로소 바른 양심에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희망을 잃어버릴수록 거칠고 차가워지는 사람이요, 희망으로 채워질수록 부드럽고 따뜻해지는 사람입니다.
희망을 심어주는 정치가, 교육이 정말 좋은 정치요 교육이요 이 희망의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리스도께 희망을 둘 때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을 수 있는 인내의 힘도 나옵니다.
의로우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주시려고 고난을 겪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셔서 이렇게 우리 안에 영원히 진리의 영으로, 희망의 샘으로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랑입니다. 신록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성모성월이요, 온 누리에 가득한 하느님의 사랑은 신록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그리스도를 통해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마라.’ 분도 성인이 수도형제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아니 수도형제들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이런 사랑은 막연한 감정사랑, 기분사랑, 마음사랑이 아닙니다. 계명을 지키는 실행이 뒤 따르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실행의 동사입니다. 의지적 사랑이요, 노력하는 사랑입니다. 좋아서 사랑하기로 하면 누군들 못 사랑하겠습니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말이 아닌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삶을 보면 사랑이 보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멀었는지요. 하여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요 평생 사랑을 공부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결코 사랑 공부에 실증내거나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시토회에서는 수도원을 '사랑의 학교‘라 부르는데 어찌 시토회에만 해당되겠습니까? 믿는 이들의 공동체 모두가 ’사랑의 학교‘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계명을 지킴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도 그 얼굴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어느 동방 수도승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까?” 어느 구도자의 질문에 동방수도승의 대답입니다. “아주 쉬워요. 눈만 열리면 어디나 가득한 하느님의 얼굴, 그리스도의 얼굴입니다.”
사랑으로 눈이 열릴 때 지금 여기서 발견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라는 말씀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사랑할 때 죄는 씻겨 져 깨끗한 마음이요 이 깨끗한 마음의 눈에 환히 보이는 주님의 얼굴입니다.
제가 1독서에서는 보석 같이 반짝이는 ‘기쁨’이라는 말을, 2독서에서는 ‘희망’이라는 말을, 복음에서는 ‘사랑’이라는 말을 찾아냈습니다.
기쁨, 희망, 사랑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신록의 생명으로 빛나는 긍정적 말들입니다.
“행복하여라, 그리스도께 기쁨을 둔 사람들! 행복하여라,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사람들! 행복하여라, 그리스도께 사랑을 둔 사람들!”
오늘 강론을 요약합니다. 이런 그리스도를 모셨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맛 나는 세상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마음을 당신의 기쁨과 희망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어 우리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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