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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 축복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30 조회수375 추천수4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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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우리들이 하느님 앞에서 축복의 시작은 의식하고 자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사에 부르심을 받아 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이 성지에 내 발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성모님이 나를 특별히 불러주셔서 왔다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내가 노력하는 것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를 위하여

애쓰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위해 기도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온 힘을 다하여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축복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기도는 청원의 기도, 달라는 기도를 많이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바치는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은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오늘 복음에 예수님이 하느님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셨듯이

우리들도 다른 이를 위하여,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를 위하여, 그 내용 그대로

기도하는 것이 모든 사랑의 첫단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애절한 기도를 하느님께 드리시는데 그 기도의 내용

첫 번째는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치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일치는 분명히 구분이 됩니다.

미사 때마다 교리를 믿기 때문에 교리적인 일치, 전례적인 일치는 어느 정도 보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일치는 사랑의 일치요, 나눔의 일치가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교회 안에서조차도 세속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성당마다 많은 파가 갈라져 있고, 텃세를 부리고, 마치 성당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성전에 있다고 하더라도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사랑과 나눔의 일치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사랑의 일치, 나눔의 일치를 할 수 있는 영적인 접착제가 뭐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입니다.


열 두 사도 하나하나를 보면 일치되려고 해도 도저히 일치될 수 없는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도 있었고, 세리도 있었고, 열혈당원도 있었고...길에서 만나면 서로가 칼을 빼서

죽이려고 하는 살벌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열 두 사도 가운데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열 두 사도가 서로가 너무나 다름에도 하나로 일치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그리스도라고 하는 그분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구역 반 모임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니라 지연, 학연, 지연, 아는 사람끼리만

친하게 지내고... 이런다고 한다면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하는 기도 첫 번째

'이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그 기도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겉으로만 하나인 척, 미사 때 똑같은 성체를 영하고, 똑같은 미사수건을 쓰는

그런 외적인 하나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과 나눔의 일치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해달라는 기도를 끊임없이 바치고 계십니다.

그 기쁨은 세속의 기쁨이 아니라 영적인 기쁨입니다.

세속적인 기쁨은 은 대부분 소유하는 기쁨입니다.

소유하는 기쁨은 늘 나를 속이고, 마치 손에든 물처럼 빠져나가고, 바닷물을 마시면 갈증이 심하듯이

한계가 있고 끝이 있습니다.


세속의 기쁨은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상위의 기쁨을 위하여 몸부림치게 하지만

영적인 기쁨은 포기하는 기쁨입니다.

기적은 언제 일어나는가?

내가 애착하는 것의 마지막 한 조각을 포기하는 바로 그 순간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둠의 맨 마지막 끝에 여명이 오듯이~~

내가 아직도 기쁘지 않다면 그 대부분의 원인은

아직도 뭔가 내 속에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분명한 답일 겁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쁨의 잔치로 초대하십니다.

영적 기쁨의 상태가 되어 있을 때에야 서로 사랑할 수 있고 나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슬픔과 우울과 분노로 차 있을 때는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두 번째는 영적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는 것, 그 기쁨은 포기할 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악마에게서 지켜달라는 기도를 끊임없이 하십니다.


이 세상에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그 어둠으로 나타나고

그 어둠을 마귀가 잡아서 늘 조종하고 지배합니다.


어저께 우연히 TV를 보았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 라는 프로에서

최근에 16명이나  집단으로 자살카페를 통해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건 분명이 악마의 장난이다!’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데로 끌고 올라가서

‘뛰어내려봐라!

‘자살해 봐라!’

마귀라고 하는 놈은 예수님까지도 자살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니 네 두 다리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천사가 받들 것 아니니?’


예수님께 달려드는 악마가 약한 우리들에게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OECD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이 자살률 세계1위라고 합니다.

작년 한해만 청소년들이 400명이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거기에 곱하기 4를 해야만 자살을 시도한 사람까지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어둠에 사로잡혀 있는가?

악마로부터 이기기 위해서는 첫 번째 기도를 놓치면 안 됩니다.


두 번째, 성사생활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자는 말도 안 되는 자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사생활을 하지 않고 고해성사도 안봅니다.

그리고 성체도 영하지 않습니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내 양심상 죄를 지었으니 성체는 못 영하겠고 성사는 부담스럽고....

그래도 주일은 지킵니다.

몸뚱아리만 왔다갔다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한 본당에 꽤 많이 있습니다.

그건 어둠에 빠져 있는 겁니다.

자기 논리에 빠져 있는 겁니다.

마귀는 ‘나 마귀다.’ 하면서 뿔 달린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들의 지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습니다.

마귀 중에서 제일 덜 떨어진 놈이 IQ가 1200이라고 그래요.

조금 똘똘한 놈은 2000이 넘는다고 그래요.

신부님이 어떻게 아시냐구요?

알긴 뭘 압니까?

그냥 그럴 것이다~~


왜냐!

저는 구마사제로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부마자와 싸우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지와 지성으로는

이 어둠의 능력과 싸워봐야 절대 게임이 안 된다는 걸 체험하고 산 사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와 성실한 성사생활을 하지 않으면 마귀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저녁기도만 성실히 잘 해도 마귀가 근접을 못합니다.


우리 신자들 가운데 저녁기도 하고 자는 사람이 30%가 안 된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TV 앞에 앉아서 세월을 지낼망정

저녁시간에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가정이 한 본당에서 10%가 안 됩니다.

그러니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저녁기도 안 하면 부모님들이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저녁기도 하면서

“주님, 오늘 생각과 말과 행실이나 궐함으로써 천주깨 지은 죄를 자세히 생각하고 그 중에 습관된 것을

살피게 하소서!


입으로 후딱 외면 20초도 안 되는 짧은 기도이지만 그러나 하나하나 생각하면

오늘 내가 말로써 지은 죄, 행위로 옮겼던 죄, 무엇이었던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주님, 오늘 이 죄인 죄 속에 허덕이고 살았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면서 마지막 저녁기도를 바칠 때 마귀는 우리의 영혼을 건드리는 것을 포기합니다.

저녁기도만 잘 해도 성인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생활과 성사생활이 우리를 악마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라고 하는 것을

우리 신자들은 늘 명심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부터라도 저녁에 성모님 앞에 촛불을 켜고 아이들을 불러 모으십시오.

“왜 아버지 안하던 것, 하십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는 나대로 놀게요.”

이런다고 다투지 말고 잘 달래서라도 우리 저녁기도라도

‘우리 저녁기도라도 바치고 살자!’

매일이 어려우면 주말이라도 일요일 저녁만이라도 촛불을 켜고 기도하십시오.

우리 천주교신자들 저녁기도 꼭 해야 합니다.

좋은 말로 잘 타일러서 부모가 모범을 보이면서 저녁기도 시작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들을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진리를 위해 몸 바치십시오.’

이방인들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라고 합니다.


진리는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진리가 있고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는 내용과 자신의 삶이 달라도 세상으로부터

돌을 받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수학선생이 수학을 기가 막히게 잘 가르치면 그 학원강사가

난봉꾼이라도 그 학원에 아이들은 몰립니다.

.지식만 잘 전달하면 되기 때문에 그 수학선생은 세상으로부터 돌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은 세상을 향하여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진리를 외쳐야 하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돌이 날라옵니다.


물론 내가 하는 말, 종이 반으로 잘라서 네 코가 맞게끔 딱 맞추어 떨어지게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 천주교신자는 저 신부님은 , 저 수녀님은 당신이 한 말,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쓴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그게 위선이 아니지...하는 말마다, 행동마다 우리는 돌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를 위해 몸 바친다고 하는 뜻은 첫 번째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진리가 아닌 것에는 눈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 내 안에 있는 거짓 진리를 없애고 참된 하느님의 진리로 바꾸어야 합니다.


첫 번째 진리를 전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영적인 빚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알려야 됩니다.

진리를 전해야 됩니다.

진리가 아닌 쪽에는 눈길조차 주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유사영성에 빠져서 교회를 멀리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교회의 큰 걱정거리입니다.

뉴에이지에 빠져있고, 정신세계운동에 빠져 있고, 기수련운동에 빠져 있습니다.

물론 기수련 운동도 어느 단계까지는 자기의 몸을 지키는 운동이지만

어느 단계가 지나면 종교화되어 있는 기수련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유사영성운동들은 단체생활을 거부합니다.

레지오 잘나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안 보입니다.

반모임에 잘 나오고 주일 미사 잘 나오던 사람들을 찾아보면 기도장에 앉아 있습니다.

엉뚱한 데 가서 이상한 짓을 합니다.

진리가 아닌 쪽에 눈길조차 주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로 내 안에 있는 거짓 진리를 없애야 됩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사람 살아온 살아와 환경과 학력과 배운 것이 다르듯이 나름대로의 잣대는 다 다릅니다.

문제는 맞지도 않는 그 눈금을 가지고 하느님을 재고, 이웃을 재고, 남편을 잽니다.

우리들의 잣대는 성령의 불로 태워서 예수그리스도의 잣대, 사랑과 용서의 잣대로

늘 사람 앞에 겸손해야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출발점은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겁니다.

사랑의 출발점은 영적인 기쁨을 누리면서 영적인 포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출발점은 악마에게서가 아니라 성령이 지켜주셔야 됩니다.

내가 진리 쪽에 서야만 당당하게 우리는 사랑을 외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오늘 이 미사에 초대해 주신 하느님, 사제의 입을 통해서 말씀을 주신

하느님, 그리고 당신의 몸까지 내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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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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