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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 6주일 - 성령의 선물[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5-31 조회수420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정말 중요한 축복가운데 하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정말 좋은 선생님을 보내주신다고 했어요.

그게 누구십니까?

성령, 성령~~

세상에서는 과학적 수학적 진리를 배우지만

성령께서는 최상의 진리인 하느님의 진리, 종교적인 진리, 윤리적인 진리, 도덕적인 진리, 다시 말하면 영적분별력을 성령께서 주십니다.


제가 군종신부를 하고 있을 때 풍을 맞은 할머니가 미사에 나오셨어요. 오른쪽에 풍이 와가지고 오른쪽 다리는 질질 끌고 다니셨고 오른손은 이렇게 돌아갔고 그리고 자꾸 신발이 벗겨지니까 이 발등위에다 고무줄을 묶어서 신발이 벗겨지지 않게끔 아무튼 질질 끌면서도 평일미사를 매일같이 나오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할머니가 영성체를 하다가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거예요. 성체를 딱 입에 넣으시면서 바로 가시는 게 아니라 이 제의 자락을 잡아끌어다가 당신 뺨에다가 요~렇~게 대는 거예요.

난 처음에는 할머니가 노망이 나셨나?

또 다른 할머니들한테 얼마나 혼났겠어요.

‘신부님 제의 자락은 잡고 뺨에다 대고 난리 떠냐고?’

근데도 뭐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 올 때마다 성체 영하고 난 다음에 꼭 제의자락을 요렇게 당신 뺨에다 대고 가는 것이었어요.

난 그냥 두시라고 괜찮다고.....

아마 그렇게 한 한달 정도를 제의 자락을 잡고, 아니면 또 밖에 나가서 내가 신자들과 이렇게 인사하면은 뒤로 돌아와서 내 수단자락 있죠?

수단을 뒤에서 요~렇~게 움켜쥐고 가~~

아~ 그러다가 어떤 날 그냥가면 그게 그렇게 또 서운해~~^^

맨 날 움켜쥐다가 그냥가면~~

한 달이 지났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아 새벽에 누가 막 문을 두들겨요.

그래서 나가 봤더니 그 할머니가 비를 흠뻑 맞고 사제관 문 앞에서 엉엉 울고 있는 거예요.

“아~ 왜 그래 할머니?”

그 집 며느리가 아주 못됐어요.

또 며느리한테 쫓겨난 줄 알고 내 이 아주 다리몽뎅이 뿌러뜨릴테니 같이 가자고.....

“할머니 또 쫓겨났구만.....”

“신부님 그게 아니여!”

“아니 근데 왜 새벽부터 이렇게 궁상을 떨어? 할머니 울고 앉았고...속상해죽겠네....나랑 같이 갑시다. 며느리 아주 내 아주 그냥 혼을 좀 내줄테니까....”

“신부님 그런데 나 어쩌면 좋아~~”

 “왜요?” “몸이 다 나은 거 같애요.”

그러면서 내 앞에서 이렇게 돌아갔던 팔을 이렇게 움직이고 있고 뻗정다리였던 그 오른발로 내 앞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거야.

“이 어떻게 된 거야. 할머니, 들어오시오 들어와”

눈치 빠른 여러분들은 벌써 알아들었어야지요.

그래서 들어가서 인제 따뜻한 차 한 잔을 드리면서 수건으로 할머니를 좀 이렇게 빗물을 닦아드리고 난 다음에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신부님 제가 한 달 동안 주책 맞은 늙은이 소리 들어가면서 신부님 제의자락 뺨에다 댄 거 아시지요?”

“아~ 나만 아나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

그렇게 하게 된 동기가 있대~~

어느 날 성서를 읽다보니깐 오랫동안 하혈하던 여인이 그 온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서 걷기도 힘들었는데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들어 왔대는 얘기를 듣고

‘그래 내 죽기 전에 저분 옷자락한번 잡고 죽어도 소원이 없다.’

하면서 기를 쓰고 정말 기어서 갔지만... 사람 발에 밟히고.......

예수님은 그때는 그냥 많은 사람들 주변에 싸여있었던 분이니까 그 힘없는 여인이 12년 동안 하혈하던 여인이 무슨 힘이 있었겠어요.

사람을 헤집고 아무튼 죽을힘을 다해서 사람 다리사이에 언뜻언뜻 보이는 예수님의 그 옷자락을 잡으려고, 그냥 기를 쓰고 가서 옷자락을 잡았어요.

잡는 순간!

하혈이 멈췄다 이거예요.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보고 “장하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구나.” 그 성서 귀절을 읽는 순간에 무슨 생각이 들었느냐?

“맞다. 그 여인이 믿음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는 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의 옷을 직접 잡을 수는 없어도 예수님이 기름 부어서 축성한 우리 신부님 제의자락을 잡으면 그게 예수님 옷자락 잡는 거지 뭐가 다를 게 있느냐?

성령이 그거를 알려주셨대요.

‘신부님의 옷을 잡아라!’

“그 순간부터 주책맞은 늙은이 소리 들어가면서 매일같이 신부님 제의자락을 뺨에다 댔고 신부님의 수단을 움켜쥐고 간 겁니다.

그런데 어저께 밤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더래요. 그러면서 비비꼬였던 팔이 이렇게 풀어지면서 손가락 끝에까지 막 피가 통하는 느낌이 들면서 손이 움직여지고 무릎이 굽어지면서 너무너무 놀랬고 어제 밤새 일어났다 앉았다하면서~~

주님께 찬미의 맘 돌려드리고 이기쁜 소식을 신부님에게 제일먼저 알리려고 새벽같이 이렇게 왔습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를 끌어안으면서

“할머니 저한테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사제의 제의가 이게 슈퍼맨의 망토는 아닙니다. 할머니의 믿음이 할머니를 살린 겁니다. 할머니의 믿음이 할머니를 살린 겁니다.”

가끔 교우분들이 ‘신부님 옷 한번 잡고 가야지.’ 하고 잡고가요.

그러면 그 믿음이 그 사람을 살리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은 성령이 우리에게 모든 걸 가르쳐주신다고 그랬죠?

이 세상에 스승 가운데서 성령보다 더 큰 스승은 없어요.

그 할머니가 성서를 읽다가 그래 하혈하던 여인이 주님 옷자락 잡듯이

'나도 신부님 옷자락 잡자.'

그거는 인간적인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쳐 주신 거예요.

우리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성령이 우리를 가르쳐주십니다.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영적분별을 가르쳐주시고

이 험한 세상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영을 맑게 하면 책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얼마나 많은 것을 성령께 배울 수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요즘 물에 대한 것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신부님이 쓴 책을 보니까 세상에 그렇게 많은 물의 종류가 있는 줄 몰랐어요. 몇 가지 얘기해 볼게요.

긍정적인 의미로 물이 뭐가 있느냐?

낙수(落水)가 있고 유수(劉秀)가 있고 담수(潭水)가 있고 호수(湖水)가있고 용수(湧水)가 있고 정수(淨水)가 있고 약수(藥水)가 있고 생수(生水)가 있고 조수(潮水)가 있고 천수(泉水)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상수도(上水道), 하수도(下水道), 침수(浸水), 누수(漏水), 한수(寒水), 건수, 무수, 운수(雲水), 홍수, 해일, 조수(潮水) 마지막으로 익수까지 있습니다.


학교라곤 가본 적이 없는 성령 충만한 할머니가 박사보다도 더 지혜롭게 분별력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가르쳐주시기에 어긋남이 없다는 그 뜻입니다.


인간이 공부해서 배운 지식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느님 나라 가는데 방해가 될 수 있죠.


성령이 우리들에게 모든 것 가르쳐주실 때 우리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때는 기가 막힌 분별력이 생기고 자존심이고 뭐고 그런 것이 다 헛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성령은 두 번째로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상기케 할 것이다. 기억나게 할 것이다.’ 하는 말이 나옵니다.

신앙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올바른 행실을 하도록 이끌어주십니다.

교만한 생각과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집안에 어려움이 있고 인생살이가 괴롭고 힘들 때 여러분들 성서를 가까이하십시오.

열 번 듣는 거보다는 한번 읽는 것이 더 은혜롭고~~

열 번 읽는 거보다 한번 쓰는 것이 더 은혜롭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6년 동안 2001년부터 성서필사운동을 합니다.

성서를 써가지고 오시면 축복장과 금반지를 드립니다.

천국반지를 드립니다.


신자들이 하도 성서를 가까이 하지 않으니까 성서를 가까이 하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였지마는 그 성서를 쓰면서 많은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저는 전해 듣습니다.

성서를 쓰면서 집안의 어려움이 해결이 돼 나갑니다.


실타래의 앞이 어디고 뒤가 어딘지 몰랐던 그 복잡하게 꼬인 일들이 성서를 쓰면서 분별이 생기면서 엉켜있는 실타래의 처음을 찾아내서 풀어내게 됐다고 하는 얘기를 듣습니다.

성서를 쓰면서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사람이 용서가 됐습니다. 하는 얘기를 저는 듣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올 때, 우리들의 교만한 생각과 그릇된 생각은 부서지고 하느님의 생각으로 채워집니다.


우리가 유혹당하는 순간에도 성령은 우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상기하게 해주십니다. 기억하게 해주십니다.

‘바오로야! 너 그러면 안 된다. 마리아야! 너 한번만 참 너 요번 고민만 넘어가면 내가 지켜 주께. 너 마귀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어. 베드로야! 그 발 다시 돌려서 하느님 쪽으로 가야된다. 그 구뎅이로 자꾸 들어가면 안 돼. 루시아야! 니가 하고 싶은 말 참아야 된다. 꼭 참아라!’


유혹이 올 때마다 성령은 우리들 하느님께로 이끌어주고 상기시켜줍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선물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평화를 주고 갈 것이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는 도피의 평화 일단 어려움을 피해서 생기는 일시적인 안도감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문제를 극복하는 평화입니다.

슬픔이나 박해나 위기라도 그 평화를 뺏어갈 수가 없습니다.

외적인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평홥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이 내안에 가득 차 있을 때는 어느 사람이 와서 나를 잡아 흔들어도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 환경이 나를 잡아 흔들어도 동네 어귀에 서있는 느티나무처럼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가슴 안에 사람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미운 놈 하나 피하면 또 미운 놈이 나타나고 그 미운 놈 피해서 달아나면 더 미운 놈이 나타나고......

어떻게 한평생 미운 놈 피해 달아나면서 살겠습니까?


주님 주시는 평화하느님 중심으로 살 때, 위에서 내려오는 영적인 평화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주님은 당신이 가실 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성부께로 돌아가려하고 있다! 얘기하십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언제까지나 하느님과 함께 있으리라고 하는 희망으로 기뻐하셔야합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축복가운데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어떤 스승보다도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시는 성령이라고 하는 스승의 도움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많은 교우들이 기도할 때, 성령께 도움을 청하질 않습니다.

어느 기도든지 기도 시작할 때, 성령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주님, 분별이 안 됩니다. 이 순간에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분별해주십시오!’

이것은 사제고, 주교고, 평신도고 수도자고..... 마찬가집니다.


성령께서 분별을 해주시지 않으면 가르쳐주시고 상기하게 해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캄캄한 밤에 헤매고 있는 불빛 하나 없이 헤매다가 구덩이에 빠지고 절벽에 떨어지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겁니다.


성령께서는 오늘 사제의 입술을 통해서도 여러분에게 분명히 무언가 하나 가르쳐주셨을 겁니다.

그거 붙들고 그 씨앗에 물주고 거름 주는 거는 여러분들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것도 모자라서 당신의 몸까지 내어주십니다.

성체성혈 기쁘게 마음으로 맞이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배티 성모님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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