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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마음속의 二重性....
작성자김창훈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01 조회수352 추천수9 반대(0) 신고
 
공공기관이나 식당 등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놀면
그냥 내버려 두는 부모가 있습니다. 옆 사람이 조금 조용해 달라고 해도
어떤 부모는 들은 척 만척 합니다. 결국 머리카락을 잡고 싸움이 벌어지게 되고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을 봅니다
애완견을 담요포대기에 아기처럼 감싸 안고 길거리나 식당에까지 들어오는 사람에게
주먹만한개가 높은 음으로 캉캉 짖어 됩니다. 식사를 하다말고 깜짝 놀랐습니다.
작은 개가 높은 음으로 짖어대니까 아주 신경이 쓰이더군요.
식당주인은 말도 못하고 바라보고 있고 손님 중에 밥집에 까지
개를 데려 오냐면서 나무라자 애완견 주인과 이 또한 큰 싸움이 되었습니다.
개 한 마리 때문에 사람과 싸움이 되었습니다.
결국 조그만 한 캉캉애완견은 손님이 뺏었어 도로밖에 던졌고
애완견은 크게 다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은 언제나 정당하다고 대변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자신과 똑 같은 행동하면 그 사람에게는 뭐라고 한마디하는 것이 세상사는 사람이랍니다.
현명하고 올바른 사람이라면 남에게 힘을 주지 힘 빠지게 하지 않습니다.
진정성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욕망 보다
듣는 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이간하지도 않습니다.
 
상식에 맞지 않으면 서로가 다투게 되고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이랍니다.
맞는다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다투고 화해하고 그렇게 사는 세상은 맞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부딪치고 갈등으로 살다가. 화해하고 또 싸우면서 지내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무 심하게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못들은 척 아무 일도 없는 척 하는
행태는 참으로 어려운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마음속으로는 즐거워 쾌재를 부르면서
입으로는 불의를 안타까워하는 척 함으로써 자신은 정의를 열망하는 것처럼 보여지 길 원하는
무모한 유치함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 유치함을 간파하였는데도
나‘자신 만 모르고 또 알면서도 계속 모노드라마를 찍는 뻔뻔스러움 도
저의 자신조차 속이는 간사함이 내 마음에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二重性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한 마디에 화는 풀리고 웃고 사는 인간이 사는 사회이면 좋겠습니다.
말과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을 향해야 좋다고 합니다.
나쁜 것을 알면서도 남에게 하는 모든 것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반복소리로 뻗어나가다 보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결국은 나의 등에 비수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게 세상이치‘라는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세상은 시끄럽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도. 유럽도. 미국도 이슬람국가. 우리네 동네도
세상은 점점 이해심 부족으로 꼬리를 물고 살아가는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서 이런 곳에서 헤어났어.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는데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곳에는 이해부족과 이기심 또 二重性으로
어려움이 많이 따른 가 봅니다
 
올바른 삶이든 그렇지 않은 삶이든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입니다
때가 되어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숨 쉬고 있는 한에서 만큼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이유이지만
우리는 우리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보여서 안타깝습니다.
자기소외의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주 파란하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묻고 기도하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정도를 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다투고 화해하고 미안해하고 사랑해주는
그런 세상이 더 좋은 관계로 만들어서 평화롭게 살게 될 겁니다.
二重性的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도록
내 자신을 오늘도 성찰하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비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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