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세계를 삶의 강한 의욕으로... ♣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자살이 빈번하게 또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살은 개인에게도 불행이지만 사회적으로 큰 비극 입니다.
엊그제 여자 아나운서가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자살소식을 접할때마다
걱정이 앞섭니다
특히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연예 스타들의 자살은 팬들은 물론
감수성이 예민한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자살이 모방 또는 동조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는
'베르테르 효과’를 야기시킬 수도 있기 때문 입니다.
수년전 여배우 이은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난 후 한 달간 자살자의
숫자가 하루 평균 0.84명에서 2.13명으로 크게 늘어났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 마디로 사회가 너무나 극단화된 물질적 가치의 강요에 의거 인간적 가치가
무너져 내린 결과이며 물질적 욕망과 외면적 화려함의 욕망이 클수록 정신적
압박도 따라서 커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욕망이 웃자라는 것과 비교하여 정신세게는 텅비어 있었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텅빈 정신세계를 강한 삶의 의욕으로 꽉 채워져야 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를, 우리가 통회하면, 어떠한 죄도 다 용서해 주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욕해도 용서해 주시고, 때려도 용서해 주시고, 죽여도 용서해
주십니다
아버지, 저들이 하고 있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통회만 하면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집나간 탕자도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런데, 한가지 용서해 주시지 않는 것은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 경우는 자살하는 경우라고 합니다.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신데, 자기 목숨이라 해서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하느님의 의사와 반대되게 죽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자살은 절망입니다.
하느님이 용서 못해주시는 것은 절망 입니다.
절망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면 구원이 있는데 이를 버리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승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하느님을 잃어버린 사람이랍니다.
아가는 엄마를 떨어저서는 안됩니다.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엄마가 없으면 불안합니다.
저승에서 하느님이 안계시면 불안합니다.
하느님이 옆에 계셔야 합니다. 하느님을 버리다니. . .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살합니다. 아파트에서 떨어저 죽고
한강에서 투하하여 죽고, 갖은 방법으로 죽고 있습니다.
부자도 죽고 가난한 사람도 죽고,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고
가장도 죽고, 학생도 죽고. . . 이런 사람들은 죽은 후에 어찌 되는지 알고
죽습니까?
자살을 사주하는 사람, 자살 모임을 만드는 사람,
형편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당에 가면 그 해답이 있는데 말입니다.
떨어저 죽을 때도 땅에 닿기전에 회개를 했다면 하느님은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떨어 질때, 깨닫고 회개를 한다면 말입니다.
자기 생명을 이렇게 던져서는 안됩니다.
우리 사회에는 계몽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계몽이 필요합니다. 자살은 유행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차단하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부터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살을 꺼꾸로 하면 "살자" 입니다. 우리자신은 물론 우리 자녀들에게도
생명의 존엄성을 교육을 통하여 강한 정신으로 무장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며 하느님께 강구하면 들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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