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근심인가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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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민하는 만큼, 고통을 견디어 내는 만큼, 인내를 하는 만큼 깊어지고 진해지고 충만해진다고 하신 옛 어른들의 말씀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고민과 고통과 인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한 것은 예외입니다.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사랑과 생명’ 입니다. 자기 몸을 사랑하듯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겪는 고민 · 고통 · 인내여야 합니다. 누군가를 살리고 구원하기 위한 고민이고 고통이며 인내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뇌와 근심은 오직 아버지께서 당신께 맡기신 이들을 사랑하고 살리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본당 주임신부로 꼭 필요한 마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이 바로 그 마음입니다. ‘사목 (cure of souls)’ 이어야 하는데, 자주 ‘업무 (work)’ 가 됩니다. 그러면 ‘사랑과 생명’ 을 위한 고민 · 고통 · 인내가 아니라 단지 일의 진척과 성과 그리고 자기만족을 위한 근심 속에서 오히려 교우들에게 고통과 화 (禍) 를 나누게 되고, 그 결과는 사랑도 생명도 아닌 분열과 상처로 인한 슬픔뿐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근심이 나와 형제를 사랑하고 일으켜 살리기 위한 근심이 될 때, 지금의 근심은 반드시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을 우리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기쁨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희재 신부(수원교구 매곡성안토니오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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