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주일학교로 한 번 되돌아가 볼까요?
제가 퀴즈를 낼 테니까 맞히시면 상을 드립니다.
1. 예수님 부활하신 후 언제 승천하셨나요?
① 20일만에 ② 24일만에 ③ 40일만에
아시는 분? 아, 손드세요~~40일이고 20일이고~~
앞으로 나오세요. 무지하게게 좋은 묵주반지입니다.
두 개가 더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원래 고향은 어디일까요?
① 감곡 ② 부산 ③ 천안 ④ 천상하늘
몇 번입니까? 손드세요. 두 번째 줄 할머니 일어나서 크게 대답하세요~~
이건 흑진주네~~제일 비싼건데...
3. 마지막 문제 예수님의 고향이 천상하늘이라고 하셨는데 ‘천상’ 어디일까요?
① 천상의 변두리 ② 천상의 시내중심 ③ 거시기 ④ 성부오른편
저요~~저요~~
앞에 첫째로 손 든 자매님...답을 얘기 하세요~~성부 오른편...
지금 이 세 가지 퀴즈를 종합해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만에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을 빙~빙 배회하신 것이 아니라 성부 오른편에 좌정하고 앉으셨다! 그렇죠?
오늘 예수님승천대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승천대축일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성모승천대축일, 또 하나는 예수승천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의 신성과 관련이 있죠?
예수님 스스로 올라가신 거예요.
성모승천대축일을 옛날에는 몽소승천대축일이라고 했습니다.
몽소라는 말이 붙든지 피승천대축일이라고 합니다.
하늘로 올림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에녹과 엘리사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두 번 나옵니다.
오늘과 같은 과학시대에 ‘승천이다!’ 고 하면 우리들은 이 승천의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올라가셨을까!
구름을 타고 오르셨을까!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셨을까!
아님 발바닥 밑에 제트엔진이 달려 쌩~~ 하고 오르셨을까!!!
답은 예수님스럽게 올라가셨다!!! 입니다.
중요한 것은 승천의 의미입니다.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미사를 하는 이 자리에
사제, 수도자, 평신도와모두 예수님 승천에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 오늘의 ‘화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승천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첫 번째는 ‘귀향’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복음선포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나자렛이 아니라 천상입니다. 하늘입니다.
그래서 승천은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래 머무시던 곳, 곧 천상하늘로 귀향하는 것입니다.
성부 오른편에 앉으셔서 원래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승천은 자신의 ‘꼴’ 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누구를 향해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저거 꼴값하네~~~” 그럽니다.
꼴값-원래는 사전적인 의미로 누구보다도 자기의 꼴을 아는 사람에게 말하는 뜻입니다.
우리 본당신부님 참 꼴 값 하시네!
우리 본당 총회장님 꼴 값 하네~~
우리 선생님 참 꼴 갑 하네~~ 하는 것은 모두 신부님답게, 회장님답게, 선생님답게 산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반대의 뜻으로 쓰이죠?
“음, 꼴값하네~~~”
여러분, 개와 당나귀이야기 아십니까?
한 집에 개와 당나귀가 같이 키웠는데 개가 하는 일은 뭡니까? 낯선 사람 오면 짖고 주인이 오면 반갑다고 매달리고~~
당나귀가 보니 자기는 새벽에 끌려 나가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 갈고 짐 나르는 데 개는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면서 사랑을 받으니 자기도 개처럼 하면 주인의 사랑을 받을 줄 알고 주인이 오니 그 큰 다리로 주인에게 매달리자 주인이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당나귀에게 돌아오는 건 칭찬이 아니라 ‘이놈이 미쳤구나!’ 하면서 몽둥이 찜질만 받았습니다.
당나귀는 그날 밤 베개를 붙잡고 울면서
개와 똑같이 행동했는데 왜 나에게는 몽둥이찜질이 돌아왔을까!
당나귀는 나쁜 의미로 꼴값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이유는~~
학부모가 선생님 무릎 꿇리고 벌을 주는 세상, 말세입니다.
즉 자기의 꼴들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사제는 사제의 꼴이 있습니다.
사제도 정말 제 꼴을 못하면 지금은 사제라고 나 존경해라! 할 수 없습니다.
사제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카리스마가 있어야 되고 무엇보다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학교선생님도 선생님의 꼴값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딴 짓거리를 하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군인이 꼴값을 못하고 정치를 하고자 나서면 그것은 독재가 됩니다.
2.5명 가운데 하나가 종교인인 대한민국이 이렇게 혼라스러운 이유는 ~~
모두 자기의 꼴값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승천은 잃어버린 자기의 꼴을 찾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찾으려는 몸부림이 것이 승천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난폭하고 잔인해지고 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곳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반면 신자라고 자처하는 우리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이 신앙보다 앞서고~~
언제라도 세속적인 욕심 때문에 마음대로 하느님을 버릴 수 있습니다.
남이 욕하면 나도 욕하고~~
세속적인 그 기준, 사고방식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남을 짓밟아야 되고 올라가야 되고~~
입으로 살인을 짓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허물어지고 부서지고 질서를 잃어버린 나의 처참한 모습을 봅니다.
깨어진 가정 앞에서/ 빗나가는 자식 앞에서/ 무기력한 부모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열되는 교회 안에서 피 흘리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의 모습으로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너, 나 모두 회개해서 다시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승천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국민회개운동을 벌였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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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꼴값을 하고 사는 것이 승천입니다.
자기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승천입니다.
우리 신자에게서 어느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겠습니까?
그 첫 단추는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아름다운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는 모습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보기 싫은 사람 없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잔인하게 보이는 사람 없습니다.
라틴어 격언에 하느님은 기도로 약해지시고 우리는 기도로 강해진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주고 못 배길 정도로 그분은 우리의 기도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기도할때마다 강해집니다.
우리가 제 꼴값을 하지 못할 때 하느님의 모상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우리가 꼴값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안에 기도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묵주신공하고 저녁만과 안한 지 옛날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부모로부터 기도를 못 배우기 때문에 기도를 못 합니다.
초등학교 때는 억지로 끌려 다니고 중학교 때부터는 냉담을 합니다.
재미가 없다고 그럽니다..
기도를 배운 사람은 절대 냉담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됩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의미에서 기도라는 단어는 개신교의 용어입니다.
기도는 그저 ‘빈다!’ 는 뜻밖에 없습니다.
원래 천주교에서는 ‘신공’ 이라고 했습니다.
신공은 거룩한 공로를 뜻합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공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못 먹어도, 세수를 하지 못하고 출근해도 일어나자마자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이 조과입니다.
우리 천주교신자들의 첫 번째로 꼭 해야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저녁에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리 일이 힘들고 몸살이 나고, 술을 많이 먹어도 비틀거리면서라도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바쳐야 하는 일이 만과입니다..
바티칸 공의회 이후 우리교회에서는 '神功' 이라는 개념이 없어졌습니다.
가족끼리 모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한 본당에 1%로나 될까요?
아이들은 아이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매달려 있고 ~~
부모는 부모대로 TV 앞에 앉아 있고, 아니면 취미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회개할 때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회개는 후회와 다릅니다.
머리 속에 뇌종양이 자라고 있다면 그 머리 뽀개서 암덩어리를 칼로 제거해야 합니다. 물론 아프죠!
대충 때우는 회개로는 사리돈 몇 알 먹는 것과 같습니다.
눈물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할 때 아픕니다.
회개하는 것 싫습니다. 자존심 상합니다....저 박스 안에 들어가기 싫습니다.
신부 앞에 무릎 꿇기 싫습니다.
내 치부를 들어내기 싫습니다.
그러나 암덩어리 제거하려면 사리돈 몇개고 대충 때우는 회개가 아니라 눈물 흘리는 회개여야 합니다.
세 번째는 포기할 때마다 하느님의 잃어버린 모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지금 평화로우십니까?
지금 내 마음이 아직 평화롭지 없다고 하는 이야기는~~
내안에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을 오늘 포기하십시오.
순례지에 오셔서 축복만 받으려고 하지 마시고~~
내 마음의 평화를 가로 막고 있는 그것을........
기쁨의 기적을 원하십니까? 욕심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포기하십시오.
암 덩어리 낫기를 바라십니까? 암까지도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감사하십시오!
기적이라는 것은 내가 애착하는 것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포기했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암 덩어리도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감사할 때 그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네 번째 용서할 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찾게 됩니다.
우리 가톨릭 안에는 인간이기 때문에 늘 하느님의 모습을 잃어버리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치유의 통로가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와 회개와 포기하면서 용서하면서 살아야 납니다.
그럴 때 분명히 자기의 꼴을 찾고 꼴값을 하게 됩니다.
오늘 승천의 두 번 째 의미는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난 뒤 무책임하게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이 오시면 큰 힘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십니다.
나는 비록 몸둥아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만~~
나를 대신하는 성령께서 오시면~~
마귀를 쫓아내는 힘과 ~~
복음을 전파하는 능력~~
치유시키는 능력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고 하십니다.
무슨 힘을 받는다는 뜻이겠습니까“
순명하는 힘을~~
오직 하느님께 충성하는 힘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힘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내 첫 자리에 두고 순명하고 충성하고 사랑할 때~~
등을 떠밀며 전교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전교하게 됩니다.
우리는 개신교신자들이 차 위에서, 전철역에서 성서책을 들고
"예수 믿고 구원 받아라~~ 하면
그럴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어유, 극성이야~~꼭 종교를 저렇게 믿어야 돼!”
그건 부러움 질투가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내가 못하는 일을 저 사람은 하거든요!!!
하느님이 정말 좋고 아름답고 귀한 분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도 그렇게 알려야 합니다.
복음 선포에 적극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은 구원받았는지도 모르고 살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다는~~ 그것도 모르는데
내 살아가는 꼴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전교는 자유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선교는 낭만이 아니라 목숨을 건 희생적봉사와 결단이요, 투쟁입니다.
승천하시는 모습만 바쳐다보던 사람들은~~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바쳐 복음을 전하는데 2000년 동안 앞장섰습니다.
작년 교세 통계표를 보면 해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신자의 증가수가 점차 둔화 된다 냉담자는 무려 450만 신자 가운데서 100만 명이 넘습니다.
안일한 종교생활로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승천대축일을 맞아서 땅을 보던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됩니다.
갈랠래아 사람들아, 너희는 왜 하늘만 쳐다보느냐! 나의 증인이 되라는 이 간곡한 말씀을 귀담아 듣고 오늘 말씀과 성체를 통해서 힘을 얻어서
무엇보다도 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표양전교/ 기도전교/ 적극적인 전교의 생활을 하면서~~
우리 자신도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습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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