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시기 동안 월요일마다 본당과 성지와 수도원을 들러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던 기억이 납니다. 기도를 바칠 때마다 어쩌면 내 삶과 예수님이 걸으신 14처의 모습이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으면 마치 지금 내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열심과 수고, 근심과 고통을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듯 주님의 십자가가 모두 흡수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14처를 마치고 나서는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내 모든 것을 읽어주고 받아주고 풀어주었다는 생각에 기쁨과 평화가 마음에 가득 찹니다.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믿는 데 내 마음이 굼뜬지를. 기도는 구원의 말씀을 우리가 깨닫고 믿게 하는 하느님의 작업시간입니다. 내 입술과 내 발길과 내 머리로 기도를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를 깨우치셔서 기쁨과 평화로 이끌어주십니다.
샬트르성바오로 수도원 피정의 집에 있는 십자가의 길 마지막 15처는 이렇습니다. ‘다시 살아나시다.’ 부활 (復活) 은 죽음과 절망에서 일어섬이고 승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기도 안에서 스폰지처럼 받아들이고 헤아려주실 뿐 아니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리고 제 몫으로 주어진 삶의 십자가의 길을 더욱 힘차게 끝까지 걸어 마침내 우리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다음 말씀이 그것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분명 다시 그리고 계속해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바로 그 세상을 먼저 걸으며 이미 이겨냈다.”
강희재 신부(수원교구 매곡성안토니오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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