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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7주간 - 우리는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08 조회수359 추천수4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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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주님 부활 다시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셨습니까?

대답이 영~~ 시원치 않네요^^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아직 부활 못한 겁니다.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는 현재 이 시점에서

아직도 미움으로 속이 끓고 있다면 부활은 먼 겁니다.

부활은 어렵습니다.

부활하기까지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십자가를 내가 기쁘게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문제는 부활한 후입니다.

부활을 하면 저절로 구원에 이르는 거냐?

아니겠지요?

부활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부활에 대해서 아는 것과 부활을 사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큽니다.

우리 초대 그리스도교는 부활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에 대한 체험을 계승시켰던 교회 공동체만이 살아남았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공동체는 그것이 본당공동체이던, 구역공동체이던, 액션 단체이든

아니면 가정공동체이던 아니면 개개인 신자의 삶이던 간에 반드시 부활을 체험해야만 됩니다.

그것은 사제건 수도자건 예외가 없습니다.


2천 년 전에 주님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마땅히 가 있을 자리에, 우리가 올라가십시오... 마십시오....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도 이미 당신 자리에 가 계십니다.

해마다 부활은 돌아오지만 부활을 지내는 것과 부활의 삶을 사는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부활을 체험을 해야 됩니다.


부활을 체험했던 개인이나 공동체, 본당은 세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삽니다.


부활한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첫 번째,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부활한 본당의 첫 번째 특징이요, 부활한 구역반의 첫 번째 특징이요,

부활한 액션단체의 첫 번째 특징이고 개인의 첫 번째 부활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초대교회 신자들은 사도행전 2장 42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 성령으로 가득차서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다.


부활한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해야 됩니다.

입으로만 부활이 아니라 부활한 자는 반드시 전교의 의무가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도 부활했고 일 년이 지나서 다시 새로운 부활을 맞이했는데.....

여기 있는 여러분들, 일 년 동안에 주변에 있는 몇 사람에게 하느님을 알렸습니까?

성령으로 가득차서 하느님의 말씀을 얼마나 담대하게 전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사제만이 아닙니다.

저도 지난 1년 동안 기를 쓰고 목이 터져라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부끄럼 없이 전하고 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느님 말씀 얼마나 전하셨습니까?

부활한 첫 번째 공동체의 모습은 말씀 공동체입니다.

말씀을 듣고 전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져갑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뭐라 그랬습니까?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주실 때

우리는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

이런 말씀에 대한 체험을 초대교회 신자들도 느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작년 1년 동안 아니면 신자가 돼서.... 성서 책 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세례 받고 십년, 이십년이 흘러도 성서를 한 번 쓰기는커녕

 단 한 페이지도 안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성서 안 읽고 천당 갈 생각하십니까?

천만의 말씀....

사도행전 4장 32절에 초대교회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살 수 있었던

그 힘은 바로 말씀체험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체험은 자연스럽게 선교로 이어졌습니다.

부활체험으로 사는 참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나누는 가운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거듭해야 됩니다.

우리는 미사 때 성서를 반드시 가져와야 되고, 미사에 오기 전에

미리 집에서 1독서, 2독서, 복음말씀을 한 번씩이라도 읽는다면 사제가 강론할 때 졸음이 올까?


주일미사를 보고 나오는 신자들에게 물었습니다.

1독서, 2독서, 복음, 신부님의 강론이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85%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그랬답니다.

우리 성당 얘기는 아니고 옆에 딴 성당 얘깁니다.

우리 성당 신자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죠?

대답이 왜 이렇게 시원찮습니까?


미사 때 미리 성서를 미리 읽고 온다면

독서자가 올라와서 독서를 낭독할 때 머리에 쏙쏙 들어올 겁니다.

신부님이 복음을 읽을 때 머리에 쏙 들어오고 그것을 해설할 때

기가 막히게 물처럼 흘러 들어올 겁니다.

성서 공부를 해야 됩니다.


늘 식탁위에 아이들이 볼 수 있게끔 짧은 성서구절 한 구절씩을 꼭 붙여놓고

밥 먹을 때마다 한번 읽고 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외우는 집도 저는 봤습니다.

화장실 앞에도 성서구절 짧게, 가는데 마다 다 성서구절이 붙여져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신앙교육입니다.

성당 나가라, 나가라.... 소리 질러도 안 나갑니다.

말씀이 아이의 심령 속에 들어가서 그 아이를 변화시켜야 되고

말씀이 내안에 들어와서 나를 변화시켜줘야 되지....

성당 나가라고 윽박지르고 소리 지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그렇게 크는 게 아닙니다.

발만 따라다닌다고 신앙이 아닙니다.

마음이 말씀을 따라서 열려야 됩니다.


부활한 신앙공동체의 첫 번째 특징은 말씀 공동체가 되어야 됩니다.

한 개인도 마찬가집니다.


두 번째, 부활한 공동체는 나눔의 공동체로 성서에 나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사도행전 2장 45절에 말씀대로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 보면 아무도 자기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사도행전 4장 34절을 보면 그래서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여러분들 공산주의가 왜 생긴 줄 아십니까?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빼앗아서라도

똑같이 나눠먹고 살겠다..... 해서 생긴 겁니다.

공산주의 이론자체는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겁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나누고 살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그렇게 살았다고 그런다면.....

공산주의라고 하는 괴물이 생겨날 리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신자들은 형제적 사랑이라는 것은 영적이고 기도의 나눔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나눔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며 갈망해야하는 그 사랑은

이성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이어야 됩니다.

주변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려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그 유명한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인 나눔이 없는 사랑은

그리스도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부활체험으로 사는 참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사는 구체적인 공동체가 돼야 됩니다.

자기에게 남아돌아가는 것을 주면 60점입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면 100점입니다.

무슨 얘긴지 알아들으셨죠?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거 남에게 주는 것은 60점이지만....

이게 꼭 나한테 필요해!

그렇지만 내 거를 포기하고 상대편에게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나눔의 정신입니다.

남아돌아가는 거.... 주는 게 아닙니다.


세 번째 부활한 공동체는 모이는 공동체 다시 말하면

친교의 공동체로 성서에는 표현이 됩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예배 공공장소인 성전에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생활현장인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임을 가졌고 그 집에서도 역시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사람들에게는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었고

거기에서 교회가 시작된다고 확신을 했죠?

모이면 같이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고 기쁜 형제애를 다졌고...

특별히 성체성사를 통해서 함께 나누는 의식을 통하여

미사 때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깊이 느꼈던 겁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우리가 성당에 모이거나

우리가 속한 구역 반모임 각종 신심단체에 참석할 때,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누는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도록 기도해야할겁니다.

교우들끼리 모여서 남의 험담이나 교회를 비판하는 모임이 아니고,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냉담교우나 고통 중에 있는 교우를 위해 기도해주는 그런 모임이 되어야 됩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세 가지의 부활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첫 번째가 말씀공동체

두 번째가 나눔 공동체

세 번째가 친교의 공동체

이렇게 살아가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 외인들이 뭐라 그랬느냐?

사도행전2장 47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으며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들의 모임이 갈수록 커갔다.

오늘날 세계인구의 3분의 1이상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자여러분!

부활하기까지도 쉬운 게 아니지만

부활한 후에 부활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들은 세 가지를 붙들고 삽시다.

말씀을 붙들고, 나눔을 붙들고, 친교하면서....

그 안에서 기도하며, 서로 용서하고,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며, 보속하면.....

말씀으로 성장되고, 나눔으로 평화를 얻고. 모여서 주님께 찬미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모시는 거룩한 부활 공동체, 거룩한 영혼이 되도록 축원합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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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티 성지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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