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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10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0 조회수30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6월 10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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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라는 사람. 

예수님의 제자들의 대표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의 첫 교황이되신 분입니다. 고기를 잡던 손을 놓고 주님의 부름을 받고 결국 주님 말씀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말씀과 베드로의 대답 장면입니다. 도대체 왜 뽑으셨는지 모를 사람, 줄곧 함께 다녔으나 결국 자신을 위해서는 '모른다'는 것이 전부였던 당신의 제자에게 주님은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주변의 다른 제자들보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낳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뒤를 따랐다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때문에 그의 입으로 주님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으로 설명하기에 너무나 나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왜 그랬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처음부터 우리의 모든 기준을 깨뜨린 사람입니다. 주님만이 아시는 이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니면 우리가 가진 기준으로는 어떻게 이런 사람을 제자로 세우실 수 있는지 이유를 대는 것 조차 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사람이 된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그 자신도 모르는 면을 들먹이며 주님께서 그를 부르신 근거를 세워주는데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 부르심에 나선 이들조차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보며 하느님의 이끄심과 거기에 걸맞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데 노력을 다하는 중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베드로는 어떤 면으로든 설명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의 모습에서 가장 주님의 제자다운 모습은 부르심을 받은 그 때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을 따라 다니며 그는 판단에 급하고 행동에 과격함을 보였고 시시 때때로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온 세상이 다 알게 되는 주님에 대한 세 번의 외면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그가 주님과 같이 있으며 늘어난 것은 점점 주님의 제자이기에 부끄러운 모습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라는 이야기는 어쩌면 베드로에게 시작부터 줄 곧 따라다닌 이야기였을지 모릅니다. 


그런 베드로는 우리의 초상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가 당신의 완전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모범이 되어 주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라며 우리의 부족함에 변명과 정당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우리에게 베드로는 가장 밑바닥에 놓여 있는 모습을 통해 또 다른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베드로는 하느님 백성이었으나 그리스도가 당신 곁에서 말씀하실 때도 그물을 손에 쥐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로 분류되던 사람, 늘 함께 다니면서도 깨달음이 늦고 행동도 느리며 순식간에 찾아온 위기에 겁도 내고 거짓말도 하며 홀로 부끄러움을 온 몸으로 드러낸 참 사람의 모습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가 나중에 우리의 교황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이 사람의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랑"을 물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놀랍게도 반성이나 후회나 회개가 아닌 자신의 진심을 주님께서 아신다는 말로 고백을 합니다. 그는 분명 죄인이고 부끄러운 이 임에도 주님께서 그를 아신다는 표현으로 주님의 질문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히려 주님의 양을 베드로에게 맡기심으로 그의 말에 대한 대답을 하십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이에게 당신이 아버지께 받았고 그토록 하나되기를 기도하셨던 모든 이들을 이 제자에게 맡깁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지만,  결국 주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교회를 베드로에 넘겼다는 결과만을 알 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논리도, 공식도, 설명도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주님의 사랑을 살펴보기에 오늘 아침 베드로라는 이 사람이 줄 곧 눈에 걸립니다. 


살아가는 것이 점점 주님의 말씀과 다르고, 심지어 주님을 모르는 것이 낳을 듯 살아가며 결국 살아온 시간 만큼, 주님을 알아온 시간만큼 그분께 멀어진 것 같은 모습입니다. 

내가 이러니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요? 그냥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 것이 고마울 지경입니다. 그러나 진심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부끄럽게 되어 버린 삶이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 세 번의 완벽한 주님을 버림이 기억에 남겨 지겠지만 주님은 아신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된 사람. 그 사람 베드로를 봅니다. 


결국 눈 앞에 완전한 스승이 사라지고 베드로는 우리의 스승이 됩니다. 우리의 길잡이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족한 사람. 그가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준 이가 됩니다. 


베드로. 하느님과 사람 앞에 가장 솔직한 사람. 그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이 그에게 맡기셨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복음을 보며 연습합니다. 이처럼 대답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대답은 주님의 진심을 아는 이의 고백일 뿐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란 고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하며 또한 그를 지켜보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이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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