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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1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1 조회수319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1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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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전교운동이 강조될 때면 늘 등장하는 성서 구절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렇게 쓰고 우리가 실상 세상에 나가 전하는 것이 '천주교'라는 종교를 전하는 것으로 한정될 때가 많지만 사실 이 구절 하나에 담긴 내용은 많이 다른 것을 품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도들에게 전해진 사명의 첫부분이며, 나머지 부분을 풀어내는 열쇠입니다. 

이 명령에서 중요해보이는 부분은 "가서" 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처럼 보입니다. 


"가서"는 행동을 말한다면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 내용을 말합니다. 


사도들에게 전해진 "가서"라는 말은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에게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 백성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의 바로 전 말씀에서 다른 민족에게도 가지말고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갈 곳을 정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든 사도들이 우선 갈 곳은 하느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평생을 하느님께 정성을, 기도를 드리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것이 같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또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 사도들에게는 얼마나 큰 어려움이었을지 헤아려집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되찾으시려는 시도에서 언제나 "떠나라"는 말씀과 함께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서"라는 말씀 속에서는 당신의 백성을 바로 잡으려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을 바른 길, 바른 삶으로 이끌려는 예수님의 시도입니다. 



다음으로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는 말씀의 선포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에게 하늘 나라의 선포는 하느님을 알리는 의미를 지니지만 하느님 백성에게 하늘 나라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는 표징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하십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이 기적들은 모두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느님의 힘을 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 그 증거가 되어 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기적이라 말하며 신기해하고 놀라며 두려워하게 되어 사람들이 깨우치고 뉘우치며 회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한 편 이 이야기들은 하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오시면 영원한 생명으로 죽는 이도 고통받는 이도 없으며 천벌이라는 하느님에 대한 편견도 하느님 앞에서 조차 자신을 챙겨대는 유혹도 사라지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전하는 이들에게서 주님은 그들의 어떤 모습에도 서로 다른 특징들이 존재하지 않도록 만드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잔인하다 싶을 정도의 말씀이지만 실제 우리는 이런 모습의 사도들에게서 그들의 능력을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며 자신들의 특기나 특징이나 카리스마라고 부르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전하면서도 밥을 빌어 먹어야 하는 처지에 아무것도 지니지 못하고,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의 사도들의 모습은 사도들이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 이들이 말하는 하느님, 하늘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표징을 특별한 곳에서가 아닌 자신들이 사는 바로 그 고장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선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사명 이전 실제로 이 일을 그대로 하신 분이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한 곳으로 불러모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언제나 직접 "가셨고", 그분이 "하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참 사랑을 보여주신 것이 먼저 였습니다. 주님 역시 누군가에게 청해서 밥을 드셨고, 누군가에게 청해 머무셨습니다. 

주님의 모습에서 돈을 나눠주시거나 하는 것을 우리는 본 적이 없고, 그분이 항상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길을 떠나시는 것도 우리는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이 말씀과 많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같은 복음을 읽으면서도 우리는 항상 준비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내가 지닌 달란트, 카리스마라는 말들로 하느님의 특별함을 입기를 즐겨하고, 사람들이 결국 자신을 찾아주길 기대합니다. 이곳 저곳으로 내어 달리는 신자들, 내가 지닌 특출한 재능이 내가 하느님께 불림을 받은 이유라 착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재능에 열광하여 하느님이 아닌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내가 사는 곳을 내가 함께 하는 사람을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무시하게 되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비판이라고 말하기에 너무나 많은 이들이 당연한 듯 생각하기에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사람은 번번히 설 자리를 잃고 말의 힘도 잃어버립니다. 자신보다 못한 이가 말하는 하느님이란 힘이 없는 모양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는 사도들의 발걸음도 볼 수 없고, 그들에게 자신이 아닌 하느님을 전하는 모습도 보기 힘듭니다. 하느님이 도구로 전락하는 위험을 눈으로 목격하며 바로 자신의 집에 그 동네에 평화를 빌어주는 한가롭고 행복한 모습은 그림으로만, 성경 속에서만 존재하는 듯 하여 힘겹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사도들을 떠나보내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리고 그분 역시 그러한 모습으로 어떤 고을에 들어서심을 봅니다. 그리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서 한 줄기 안도감을 느낍니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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