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요한 보스꼬 신부님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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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창훈 | 작성일2011-06-12 | 조회수1,049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
종로성당이 천주교 내 노인복지의 중심이 된 것은 지난 2002년 최성균주임신부님이 부임하면서부터.
더 많은 노력하신 신부님이십니다. 지난 93년 로마 유학 후 귀국해서
부천의 성가양로원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 어머니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바깥출입을 못하고 계셨습니다.
자연히 노인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작은 정성과 관심에도
기뻐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 길을 택했습니다.
최성균신부님은 그 후 임지를 옮기면서 노인·노숙자 급식 등 지원사업을 했고,
안식년도 양로원에서 보낼 정도로 관심을 쏟았습니다.
종로성당에 부임해 다양한 복지사업을 벌이면서 그분은 노인들이
육신의 배고픔 못지않게 영혼의 갈증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됐었다는 것입니다.
노인을 위한 교리강좌를 개설하자 “한글 모르고, 이해가 늦다”고 소외돼온 노인들이
몰려들어 지난 연말까지 모두 430명이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 중 80% 정도는 요즘도 꼬박꼬박 미사에 참가하신답니다.
서울시내뿐 아니라 경기도 군포, 의정부 등에서도 전철을 타고 와 미사에 참석하신분입니다.
―어느 분의 이야기 중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보스꼬 신부님에게서
학생 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려움이 많았던 저에게
도움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저를 얼굴 보면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너무 오래 동안 뵙지 못했습니다. 저의이름은 그 때와
다르기에 지금 이름으로는 잘 모르실겁니다.
장애우에게도. 어려운 사람들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신부님 자비를 틀어서라도 이웃을 도왔고
일산성당 주임신부님으로 보직하시면서는 일산성당을 새롭게 봉헌하기 위해서
빈병도 주워서 팔고 신문지폐품 팔아서 일산성당을
새롭게 짖기 위해서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성격을 참 많이 따르고자 노력하고 삽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면서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신부님에게서 배운 대로 살고 싶지만
어림반품도 없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일반신자가 사랑을 실천하지만
신부님만큼은 따르지 못하지요 세월이 지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옛 요한보스꼬 신부님 모습이 자주 떠오릅니다. 요한보스꼬 신부님께서는
가끔 성당마당에서 동전치기를 하셨는데 아주 잘하십니다.
선을 끗고 동전을 던져서 누가 선에 가까이 붙이느냐가 성패인데
신부님께 도전해서 동전 따본 일이 없었습니다.
이제 다시한판 붙어서 좌.우측 주머니에 동전이 짤랑짤랑 소리가 날 때까지
꼭 따고 싶습니다. 그렇게 이웃을 위해서만 오르지 평생을 바치신 요한보스꼬 신부님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그렇게 당신의 몸을 돌보지도 못하시고
오늘도 어려운 이웃과 할머니 할아버지 장애인과 같이 살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지금은 많이 변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젊으신 신부님들은 그래도 그 때 신부님 보다는 편할 겁니다.
최성균 요한보스꼬 신부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에 실천하시고 따르는 사제입니다
형제자매님께서도 꼭 요한보스꼬 신부님을 기억해 주시고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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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의 미류나무 요즈음 많이 사라진 모습에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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