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12 | |||
---|---|---|---|---|
작성자김용현 | 작성일2011-06-12 | 조회수34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1년 6월 12일 성령 강림 대축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23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건네신 첫 말씀입니다. 말씀과 더불어 제자들의 눈 앞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뚫려진 손과 옆구리가 드러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던 주님을 찾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주님의 마지막의 몇 안되는 추억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내 주님은 다시 만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간 것 외에는 아무 준비도 없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이 따르던 스승의 죽음에 세상으로 열려진 문마져 걸어잠근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전혀 이 상황을 모르는 분처럼 제자들에게 인사하시고, 또한 바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당황스런 주님의 말씀은 묘한 행동으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숨" 우리는 너무 빠른 결론으로 이 숨을 성령으로 바로 연결시키지만 우리는 이 숨길이 의미하는 바를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이 내 쉬시고 제자들에게 전해진 숨의 의미를 말입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대축일입니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숨은 우리에겐 생명으로 헤아려지는 우리의 삶의 방식입니다. 숨은 세상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자, 또한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공기를 말하기도합니다. 그 공기를 사람이 취하고 내 놓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숨을 쉰다' 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숨은 사람 안에 있기도 하지만 사람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역시 숨을 쉬는 인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숨은 우리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쉬는 같은 공기를 통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스승이 자신의 숨을 불어 넣은 것은 어떤 뜻이 있을까요? 주님이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이 제자들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에게 전해진 이 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공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호흡해온 사람들이 숨을 나누었다는 것은 같은 삶의 원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같은 공기는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 예수님의 숨을 나누어 받는 제자들에게 스승과의 공통점을 가지게 되는 통로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숨을 통해 성령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을 받아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니 권한이 될 수도, 능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가르침일 수도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에 이어지는 이 용서는 정말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주님의 숨을 성령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주님의 모습을 통해 이 말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은 사실 이 용서를 베풀 첫번째 주인공이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용서를 받아야 할 첫번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숨을 쉬시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주님께 떨어져 있을 때 하셨던 '평안', '안심'과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순간에 주님은 평화라는 이야기로 그 용서를 표현하고 제자들을 지켜주셨습니다. 닫힌 문과 두려움을 풀어주는 예수님의 행동이 그분의 변하지 않는 사랑에서 나왔음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성령을 통한 숨을 쉰다는 것은 그 사랑을 가지는 것이며 그 사랑이 밖으로 나올 때는 사람을 용서해주는 베푸는 식이 아닌 그 사람을 안심시키고 지켜주는 방향으로 향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용서의 권한을 분리해서 알려주십니다. 이 용서가 시킨다고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권리로 주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 사명이 각자 제자들의 삶 속에서 각자의 판단 속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숨을 쉬는 사람은 숨을 통해 생명을 얻고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통해 세상을 스스로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이 숨이 사람을 조정하거나 명령하지는 않는 것처럼 성령과 함께 한다는 것이 복종의 형태로 진행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가 정말 주님을 헤아리고 주님처럼 세상을 사랑하는가에 따라 그는 용서를 할수도 그대로 둘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목숨을 걸고 문을 엽니다. 그리고 문 밖에서 그리스도와 같이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처럼 세상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당신에 대해 설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고, 그분의 모상으로 거룩함을 향해 갈 수 있는 것도 성령이 아니시면 불가능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세상을 구하게 하는 우리의 숨과도 같은 분이시며, 단 한 순간도 우리의 손과 발, 우리의 입과 우리의 정성 앞에 나서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숨을 쉬고 살아가며 보고, 듣고, 움직이지만 판단과 결정과 선택은 항상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에 주시는 주님의 은총과 선물에 사람들은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그 일곱가지의 은총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홉가지의 열매가 그 하느님 은총의 삶을 통해 얻어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은총보다 오늘 주님의 부활하신 모습은 우리에게 가장 큰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그 어떤 선물보다 주님이 주신 그 '평화'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성령을 받읍시다. 그 성령이 우리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할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