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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반응(reaction)과 응답(respondence)" - 6.1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3 조회수537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1.6.13 월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1195-1231) 기념일

2코린6,1-10 마태5,38-42

 

 

 

"반응(reaction)과 응답(respondence)"

 

 

 

길가에 가로수로 심은 메타세콰이어 나무들 중

가끔 누렇게 죽어있는 나무들을 봅니다.

뿌리내림에 실패한 나무들입니다.

땅 깊이 뿌리내릴수록 신록으로 빛나는 나무들처럼

하느님 안에 깊이 정주의 뿌리내릴 때 신록으로 빛나는 영혼들입니다.

 

오늘은 ‘정주 영성’에 대해 나눕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언제나 그 자리의 산과 나무들은

정주의 살아있는 표지들입니다.

‘정주의 넓이’가 아니라 ‘정주의 깊이’요,

정주의 깊이는 믿음의 깊이를 의미합니다.

 

정주의 내공이 깊을수록 안팎의 영향도 덜 받아

내적으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입니다.

하여 정주의 삶이 깊을 때 사랑과 존중이 담긴 응답(respondence)이요,

정주의 삶이 얕을 때

감정적 반응(reaction)이 오고 감으로 서로 상처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독서의 사도 바오로는 과연 정주 영성의 대가입니다.

얼마나 하느님 사랑 안에 깊이 뿌린 정주의 삶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확연히 들어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이런 경우는 그대로 보복의 반응입니다.

생각의 깊이가 전혀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이런 반응을 하지 말고 사랑의 응답을 명령하십니다.

사랑의 응답만이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길이며

악순환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길입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

 

악인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오히려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사랑의 응답을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란 말도 생각이 납니다.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 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말씀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복의 반응을 일체 중단하고 계속 사랑의 응답을 시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응답만이 반응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느님께 깊이 뿌린 내린 정주의 내공이 있어

이런 사랑의 응답이 가능합니다.

 

진정 하느님 사랑 안에 깊이 뿌리 내린 예수님의 정주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정주 영성의 대가입니다.

다음 자부심 넘치는 고백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하느님의 일꾼답게 언제나 한결같은 바오로의 삶입니다.

후렴처럼 반복되는 ‘늘 그렇게 합니다.’ 라는 말이

바로 그의 항구한 정주의 삶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진리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힘으로, 동요됨 없이

늘 평상심으로 ‘늘 그렇게’ 할 수 있음에서

사도와 그 일행의 정주의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깨닫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예수 성심의 사랑 안에 뿌리 내린 정주의 삶이 깊어지면서

내적 풍요의 삶입니다.

 

밖으로는 초라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내적으로는 꽉 찬 실속 있는 삶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부자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정주의 사람들이 진정 믿음의 사람들이요

바로 다음과 같이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내용이 좋고 본받고 싶어 그대로 다 인용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만으로 행복하고 부유한,

정주의 사람들이자 믿음의 사람들이요,

정주의 깊이로부터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매일 끊임없이 일과표에 따라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에 충실할 때 깊어지는 우리 정주 영성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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