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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복음의 2번째 이야기 [십자가의 눈물]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3 조회수340 추천수1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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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 <1코린토서 15, 47 - 49>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 =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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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없는 사랑  /  사랑이 없는 고통
 
고통이 없는 사랑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닐 것이며
사랑이 없는 고통이라면 '그리스도의 고통'이 아닐 것입니다
 
 
 
 
십자가 인간
 
(십자가의 아들 / 십자가의 어머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복음서>
 
 
 

하느님은 사람에게 고통을 불어 넣어 주신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기는 하느님 당신의 '사랑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고통이시기에 고통과 죽음을 이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기에 고통과 죽음을 온전히 이기시는 것입니다. 영혼이여, 만일 사랑의 보화를 얻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몸에 받으신 고통만 묵상하지 말고 그분의 성심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지극하시고 무한하신 예수성심의 사랑을 묵상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의 수난과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걷는 그분의 벗들은 그분의 부족한 남은 고통에 동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통이 아직 남아 있기에 그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원죄로 인한 사람의 고통으로 부터 동참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지극하시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고통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람에게 아직 남아 있는 고통, 모든 피조물의 신음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사람의 고통에, 인간이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남아 있는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성심껏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면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비우신) 사랑의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처럼 사람의 남아 있는 고통에 사람이 사랑으로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보잘것 없는 형제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해 준 것과 같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께서 사람 안에 오시어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사람 안에서 '당신의 그대로' 행할 때에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처럼 고난과 고통이 따르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하게 됩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람을 사랑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게 됩니다. 예수성심은 인간 차원의 고통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차원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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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사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간 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십자가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이 발생했습니다. 이 악을 제압하기 위해 다른 악이 작용한다면
 
처음의 악은 나중의 다른 악에게 제압이 된다 하여도 여전히 나중의 다른 악은 남습니다. 오히려 악을 제압하는(한) 명분으로 말미암아 나중의 악은 처음의 악 보다 더 발전된 악으로 변하여 질 것입니다. 이것은 악이 지상과 인간 안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이 땅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온갖 모든 악의 근원 자체를 뿌리 뽑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으로 악을 뿌리 뽑으신게 아닙니다. 사랑으로 그러하셨습니다. 악을 악으로 제압하면 악이 또 다시 뿌리를 내리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사랑으로 나중의 악이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하였으며 처음의 악이 사랑으로 또한 변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세상 정의)에서 오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1요한서 3, 8> 악에 대하여 '앙심'을 가지고 새로운 악(나중의 악)을 창출해 내는게 아닙니다. '앙심'은 사랑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멸시와 미움 속에서 상처를 남기는 채찍을 맞으시는(신) 예수님을 묵상해 보십시오. 악에 대하여 악으로써 대응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인내하며 극복하고자 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거창하고 인간이 차마 도달할 수 없는 저 높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그와 반대로 아주 낮은 곳에 있으며 인간의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았고 바로 인간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 내어줌'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거창한 표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기에 자기 안에 십자가가 있는 사람은 '십자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내어 준다라는 것은 십자가의 희생제사인 성체성사적 삶을 의미합니다. 자기 희생을 뜻합니다만 자신의 존재 자체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현실과 격리된 차원이 아니라, 세상의 현실 안에서 사랑의 진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자신의 작은 사랑과 자기 나눔의 빵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가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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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당신(예수님)께 순종 =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의 순종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피서 2, 5 - 8>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당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5, 8 - 9 참조>
 
 
 
 
 

 

 

<2010년 5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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