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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4 조회수1,213 추천수2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6월 14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So be perfect,
just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Mt.5,48)
 
 
 
제1독서 2코린토 8,1-9
복음 마태오 5,43-48

세상에 그 누구도 고통과 시련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그렇지 못한가를 말하면서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세상에 일정하게 정해진 삶의 표준이나 기준이 있을까요? 즉, 행복과 불행이라는 구분을 정확하게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그래서 내가 불행한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왜 나만 불행하고 이렇게 못 살까? 왜 나만 가진 돈도 그리고 재능도 없을까? 왜 나만 부모 복이 없고 자식 복이 없을까? 왜 나만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의 기준은 남에게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기준은 나에게서 시작되며, 스스로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에는 불행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도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자처하면서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따라서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상의 기준을 쫓으려고 하기 보다는, 그 행복을 자기 자신 안에서 찾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해주시는 길은 세상의 기준을 통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리고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으며, 또 몇몇은 당연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시해주시는 길은 나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반드시 올바른 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면서 판단하고 비판하는 길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의 길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가장 올바른 길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할 때의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품고 있을 때 과연 편안하고 행복하셨습니까?

우리들 모두가 완전한 사랑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시지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에 맞게 살지 못한다고 우리들을 곧바로 벌하십니까? 아니지요. 하느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시면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랑을 가지고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완전한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그 완전한 사람이 될 때 완전한 행복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참,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16일까지 덕적도로 신학생 하계MT를 다녀옵니다. 그래서 16일까지 새벽 묵상 글을 올릴 수 없다는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하계MT 잘 다녀올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의 것(원태연).




안녕히 가세요.

어제 공항으로 떠나실 때 찍은 사진

어제 아침 인천교구 전교구장님이셨던 나굴리엘모 주교님께서 본국인 미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제게 견진성사를 주셨고 또한 사제서품까지도 나굴리엘모 주교님으로부터 받았기에, 늘 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뵐 수 있을까 싶습니다. 주교님의 연세가 벌써 86세나 되시기에 장거리 여행이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자상하신 주교님, 검소하신 주교님, 사랑 가득하신 주교님.

주교님의 이러한 모습들을 기억하면서 기도합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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