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로써 짓는 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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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6-15 | 조회수512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이었던 작가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45)는 “이 세상에 한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하여야 할 말이다. 세상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이요, 삶의 태도이다. 요즘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여론으로부터 가끔 지탄을 받게 되는 이유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책임감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한 교회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결핵으로 죽어가는 오빠의 모습을 보다 못한 한 가난한 누이가 미군에게 몸을 팔았다. 그래서 오빠의 병을 치료하게 되었다. 오빠의 건강은 많이 회복 되어 갔다. 어느 날 한 신자가 이 사실을 알고는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은 오빠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충격을 받은 오빠는 ‘동생이 몸을 팔은 대가로 병이 나았다니...’ 교회에도 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 몸까지 팔아 오빠를 살렸는데 이제 오빠가 없는 세상 살 가치가 있겠는가 하고는
누이도 목숨을 끊고 말았다. 장례식 날 두 시신을 앞에 두고는 본당신부가 울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너는 세상에 있을 때에 양떼를 얼마나 돌보았느냐?”고 나에게 물으시면
“하느님 용서하소서. 저는 양은 한 마리도 없고 오로지 이리떼만 있는 교회에서
이리떼만 먹이다가 왔습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만들거나 터무니없는 소문만 듣고 애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은 이리와 같다. 이리떼가 활개를 치는 교회나 사회에서는 선량한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다. 때때로 이런 일은 신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는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고 답답하고 가슴이 터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게 맡겨진 양들이니 그래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자 노력한다.
신부도 상처받는 사람이다. 내색을 하지 못할 뿐... 나같은 소심한 사람은 더 그렇다는 이야기다. 신부가 평생 먹어야할 밥이 '신자들의 불평'이라 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 밥으로 살아간다. 이리떼도 가끔 보이지만 아직은 사랑스런 양들이 더 많아 기쁨으로 살아간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성당 마당을 돌고 있는데 어느 형제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반색을 하며 달려온다. “신부님, 성경에 예수님께서 벙어리를 고치신 기적이 나오잖습니까? 그런데 저는 벙어리가 말하는 것은 큰 기적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정말 기적은 말 많은 수다쟁이 내 마누라를 잠잠케 하여 주신다면 그것이 정말 기적일 것입니다.” 사람 사는 모양은 다 같은 것 같다. 신부인 나나, 그 형제님이나...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사제관에는 수다쟁이 아내는 없으니 말이다. 따뜻한 말은 생명의 나무가 되고 가시 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4)
이 글을 읽으며 알게 모르게 우리가 말로써 짓는 죄가 얼마나 많은지 곱씹어 보았습니다. 나에 대한 비방의 이야기에 왜 이렇게 민감해지는지...그것이 사실일때는 그도 덜 억울한데...전혀 얼뚜당뚜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는 가슴이 터집니다.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생각없이 하였을까...그래서 알게모르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상처받은 이 마음을, 저로 인해 상처입은 분들을 위해 봉헌합니다... " 본의 아니게, 또는 본의로 그랬습니다...용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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