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랑’ 주제로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14처
“자식을 위해 썼던 가시관, 이젠 왕관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간 이가 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분이다. 또하나 예수님의 사랑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일생을 자식들을 위해 ‘부모’라는 십자가를 지고가는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분처럼 묵묵히 고통의 길을 걸어간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을 기다리며 이경희(에드부르가·대구 고성본당) 작가의 십자가의 길 14처 작품을 통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해보자. ‘나’ 자신보다는 ‘자식’을 위해 한평생 살아간 우리네 부모들. 손과 발을 주제로 한 이 작가의 작품에는 부모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있다. - 제1처 처연한 손.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처연한 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 고통의 무게를, 그리고 당신의 죽음을 알고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신 예수님. 그분의 모습에서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고생한 엄마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제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고난의 첫 발’ 잔병치레가 많던 저는 엄마에게 아픈 자식이었습니다. 아픈 자식은 부모에게 십자가이자 가시관이라는 것을 이제 압니다. 무엇보다 자식을 먼저 생각했던 엄마의 마음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제3처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힘에 겨워 넘어지신 고난’ 엄마도 때로는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고통과 갈증으로 기력이 약해진 예수님께서 넘어지셨습니다. 다시 일어서 걸어가신 예수님처럼 우리네 부모님들도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사랑으로’ 성모님은 예수님의 수난을 지켜보면서도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고 계셨겠죠. 그렇지만 한 인간의 어머니로는 인류 역사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아들을 구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제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도움의 손’ 시몬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를 잠시나마 덜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는 특별한 음식을 만드신 날이면 자식들을 집집마다 보내 이웃에 나누신 후에야 먹게 하셨습니다. 제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합시다 ‘치유’ 상처 난 얼굴을 닦아 줄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이 육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아픔까지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을 닦아주는 수건에 상처의 흔적인 피를 묻힌 것 또한 그 상처와 고통이 치유가 되길 기도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제7처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고난의 위기’ 7처 작업을 하던 중 바이러스 뇌염으로 사경을 헤매는 신세가 됐었습니다. 기력이 다해 두 번째 넘어지신 예수님처럼 사지가 뒤틀리고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8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위로’ 8처 작업은 엄마가 하늘로 떠나시면서 하게 해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부모에 대한 감사함을 담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보며 엄마의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영광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로 1년째 되었을 어느 날 ‘경희야 괜찮다’ 하시며 엄마가 저를 안아주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9처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거듭되는 고난’ 앞으로 쓰러질듯 한 예수님의 손과 발은 엄마의 고통을 대변합니다. 누군가 도와줘도 기력이 없어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을 떠올리며 두 손 모아 기도했습니다. 치매를 앓으신 엄마, 점점 쇠약해져가는 엄마를 보면서 아무 것도 해드릴 수 없기에 괴로웠습니다. 제10처 예수님께서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감내’ 예수님께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옷 벗김을 당하십니다. 너무나 치욕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시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에게서 부모님을 떠올립니다. 자식을 위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시고 묵묵히 걸어 내셨으니까요. 제11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어디까지 입니까?’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집니다. 성모님께서는 얼마나 무서우셨을까요. 아들의 손에 대못을 박는 장면을 지켜보는 그 순간은 어떤 형벌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모님 가슴에 박힌 못은 끓어 흘러 넘쳐 심장을 멈추게 했을 것입니다. 제12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죽음은 영원한 안식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손은 찢겨지고 퉁퉁 부어 고통으로 뒤틀리고 쥐어짜진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맬 때의 모습을 전해 듣고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통은 정상적일 수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임종을 지키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 제13처 '죽음을 통한 영원한 삶' 제13처 제자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림을 묵상합시다 ‘죽음을 통한 영원한 삶’ 성모님의 슬픔을 예수님의 손과 발로 표현하려 했습니다. 다리는 짓이겨져 녹아내리고 손과 발은 구멍이 나 찢어져 떨어져나가는 고통과 아픔을 담았습니다. 성모님 품에 안긴 예수님을 표현하며 제가 엄마의 임종을 맞이할 때를 생각해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제14처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빛을 밝혀 주소서’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품으로 가셨듯이 우리 부모님도 그랬을 것 같았습니다. 자식을 사랑으로 키웠기에 자신의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가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기꺼이 감내해야할 고통으로 자리 잡았던 가시관은 이제 왕관이 되었습니다. 이경희 작가는 조형예술학 박사(단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졸업), ‘토희’ 대표. 개인전 11회. SOFA Chicago2003(2003), 중국사천미술대학 초대전(2006) 등 단체전 다수. 중국 중경미술관, 북구문화예술회관 등 작품소장. [가톨릭신문, 2018년 3월 25일, 박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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