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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범한 관상가의 삶" - 6.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5 조회수526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1.6.15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2코린9,6-11 마태6,1-6.16-18

 

 

 

 

 

"평범한 관상가의 삶"

 

 

 

예전 존경하는 선배 수도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누차 강론 때 마다 인용하는 늘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규칙대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다.”

일과표에 따라 평범한 일상에 충실한 것이 잘 사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래야 초지일관 한결같이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은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 장거리 마라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삶이 실상 비범한 깊이의 삶입니다.

단순 소박하며 평범한 삶,

하루 이틀은 몰라도 평생 이렇게 살려면 내공 없이는 힘듭니다.

바로 평범한 일상에 충실하며

깊이를 추구하는 삶은 우리 분도회의 영성입니다.

 

뭔가 유별난(special) 것이나 이상한(strange) 것은

참 영성의 징표가 아닙니다.

 

얼마 전 잘 아는 지인과의 대화를 잊지 못합니다.

진담반농담반 같은 말씀이

가벼운 충격으로 제 삶을 되돌아보게 한 참 좋은 화두였습니다.

 

“도대체 신부님은 언제 공부하고, 언제 성경 읽고 언제 기도합니까?

  예전 신학교 강의도 하셨다는 데 어떻게 가르쳤어요?

  제가 신부님을 뵐 때 기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성경을 읽는 것 같지도 않고, 공부하시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강론을 듣거나 읽어보면 기도하는 분이구나,

  성경묵상도, 공부도 많이 하는 분이구나 깨닫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지인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맹렬히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찌 보면 가장 기도 않고, 성경 읽지 않는 게

수도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일과표에 숨겨져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 분도회의 영성생활은 눈에 띠는 비범한 삶이 아니라

철저히 숨겨져 있는 삶입니다.

참 역설적으로 환히 드러나면서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 삶입니다.

 

바로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시간이 그러합니다.

똑같은 수도복도 수도자들을 환히 드러내면서 전혀 드러나지 않게 합니다.

드러나면서 드러나지 않음으로 서로 편하고 분심도 주지 않습니다.

 

만약 일과표에 벗어나 다 일할 때

혼자 두드러지게 성당에서 성경 읽거나 기도한다면,

또 다 같이 수도복 입고 기도하는데 유별나게 사복 입고 기도한다면

서로 불편하고 분심도 많을 것입니다.

 

드러나면서 드러나지 않아 모두에게 불편과 분심을 주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영성가 입니다.

제가 이런 통찰을 얻은 것은 오늘 복음 주석 한 구절(마태6,5)에서였습니다.

 

‘기도는 정해진 시간에 모든 사람이 해야 하는데,

  위선자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기회와 장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간의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영적 경쟁을 막아 주는

우리의 공동일과표가 얼마나 고마운지요.

드러나면서 드러나지 않게 함으로 서로 겸손히 편하게

분심 없이 기도에, 일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지인이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간과한 점은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 때

온 마음을 다하여 집중하여 성독하듯 기도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사실 우리 분도수도자들에게 이 공동전례기도 시간은

마지막 영적 보루요 생명과도 같습니다.

이 거룩한 시간을 잃으면 따로 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성경 읽기는 쉽지 않아 성소도 위태해 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한결같이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행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숨겨지고 하느님 앞에서 드러난 수행을 강조하십니다.

 

비단 자선, 단식, 기도뿐 아닌 모든 수행에서의 영적 원리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단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진정 관상가요

가난한 자 같으나 내적 부요의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공동생활에 충실할 때 이런 겸손의 덕입니다.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삶에는 두 가지 임이 드러납니다.

함께 수행함으로 드러나면서 드러나지 않는 경우와

완전히 감쪽같이 숨겨진 수행의 경우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이런 감쪽같이 숨겨진 수행의 시간과 장소라는

‘영적 뙈기밭’을 지녀야 하고 서로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함께와 홀로가 병행되어야 깊어지는 영적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느님 안에 깊이 숨겨진 삶을 통한 자발적 선행과 자선입니다.

 

바오로의 다음 권고대로 살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숨겨진 삶을 살 때 저절로 깨닫게 되는 진리입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끊임없이 이웃과 주님의 은총을 나누며

마음 부자로 살 수 있는 관상가들입니다.

 

21세기 신자들은 모두 신비가로 불림을 받고 있습니다.

 

영적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길도

숨어계신 깊이의 하느님과 만날 때입니다.

 

매일의 이 공동전례 미사시간,

숨어계신 깊이의 주님을 만나 영육의 갈증이 해갈되고 치유되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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