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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7 조회수786 추천수17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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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금요일-2코린토 11장 18-30절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고통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

 

 

     어린 시절, 형과 함께 강가로 놀러갔을 때의 일입니다. 좀 더 좋은 낚시 포인트를 찾아 물을 건너다가 그만 급류에 휩쓸려버리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한 손에는 이것저것 들고 있었는데, 무의식중에 그것들이 떠내려가지 않게 꼭 쥐고 있으니, 몸은 더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꼴까닥 꼴까닥 물을 몇 번 먹고 나니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하며 이게 죽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겨우 겨우 물속에서 자라난 나뭇가지 하나를 붙들게 되었는데, 마음을 진정시키고, 손에 든 것 다 버리고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정신이 다 아찔해집니다. 하느님께서 평생 3번 정도는 기회를 주신다는 데, 그때 한번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한 번은 모험심 강한 형제들과 어설픈 뗏목 하나를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마침 썰물 때라 바다를 향해 잘도 나갔습니다. 먼 바다로 나오니 가슴이 탁 트이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와도 너무 멀리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리 돌아가자며 노 비슷한 것을 저었지만, 워낙 썰물의 흐름이 심해 전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바다 위에 떠서 죽을 고생을 하다 겨우 지나가던 어선의 도움으로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모험 같은 것은 절대로 안해야겠다, 남들이 안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 을 했습니다.

 

    이런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을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소개되고 있는 바오로 사도의 ‘고난의 여행길’을 눈여겨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세계여행을 몇 차례나 하게 됩니다. 당시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주로 도보여행이었습니다. 재수가 좋으면 마차를 얻어 탔을 것입니다. 너무 먼 거리는 배로 여행을 했는데, 안정성이 별로 보장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목선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바오로 사도의 회상처럼 바다를 건너다가 파선되는 경험을 3번이나 했습니다. 겨우 나무 조각 하나를 붙잡고 하루 온종일 바다 위에 떠있기도 했습니다. 구조를 기다리는 그 순간의 두려움과 고통은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투옥됩니다. 투옥된다는 것,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 자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제약을 받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갇혀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매도 엄청 맞았습니다. 유다인들에게 39대씩 다섯 차례나 맞았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사용한 매가 회초리, 눈금자는 아니었겠지요. 한 대 맞으면 신음이 자동으로 새어나올 정도의 모진 매였습니다. 그 매 몇 대 맞으면 보통 사람들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것입니다. 그런 매를 바오로 사도는 195대난 맞은 것입니다. 몇 대 맞았냐 하는 것보다 누군가로부터 이유도 없이 폭력을 당한다는 것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바오로 사도의 생애, 외적, 인간적인 눈으로 보니 참으로 혹독하고도 험난했습니다. 바오로 사도 스스로 나열하고 있는 ‘고난의 여정’을 하나하나 챙겨 나가보니, 정말 눈물이 다 날 정도로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오로 사도는 그 모든 고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고생이었으므로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너무나 끔찍해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들이었지만 스승 예수님으로 인한 사건들이었기에 바오로 사도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여정도 돌아보면 결코 순탄치만은 않겠지요. 다들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될 스토리들을 갖고 계시겠지요. 때로 도무지 수용하기 힘든 사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사건,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연들도 겪으셨겠지요. 그래서 때로 하느님을 원망도 하셨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힘겨워하고 계시겠지요.

 

    이런 우리 모두에게 바오로 사도의 태도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는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고통을 겪을수록 더 강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고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 ‘십자가에 대한 가치부여 작업’이 바오로 사도의 생애 안에 이미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고통이 다가올 때 그 고통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연결시키려는 노력,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가 다가올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참 사도로 거듭나는 노력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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