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을 보아라!" - 6.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 |||
---|---|---|---|---|
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1-06-18 | 조회수349 | 추천수9 | 반대(0) 신고 |
2011.6.18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코린12,1-10 마태6,24-34
"하느님을 보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길(道)이자 눈(眼)입니다. 하느님을 잊어 길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이요 눈멀어 맹목적인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실태입니다.
얼마 전 다음 두 예를 체험하면서 ‘아, 하느님 없이도, 하느님을 모르고도 평생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어제 뜨거운 날 배 밭 봉지 싸느라 수고하시는 분들을 찾아봤습니다. 오후 참을 들기 바로 직전, ‘참이 나왔다’고 ‘참을 하시라’는 수사님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봉지를 싸는 자매들이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이 사람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만듭니다.
순간 ‘아, 노동이 있어 단 식사, 단 휴식, 단 잠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그런데 하느님 없이도 일하고, 먹고, 쉬고, 놀고, 자고… 이렇게 평생 연속된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깨달음처럼 떠올랐습니다.
사실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또 얼마 전의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건강을 위해 ‘타고난 것이 30%, 환경이 30%, 음식이 40%’라는 기사에 얼핏 공감하다 깨달음처럼 스친 ‘어, 하느님이 빠졌네.’라는 생각입니다. 참 공허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것이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하느님 빠진, 기도 빠진 일이나 건강, 참 공허합니다. 하느님 빠진 일이나 건강의 우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여 일이나 건강에 앞서 기도를, 하느님을 강조하는 우리 분도수도생활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하느님을 섬긴다하면서 재물을 섬기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눈멀게 하는 재물이요 눈 밝게 하는 하느님입니다. 바로 우리 수도승들은 물론 진정으로 믿는 모든 이들은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하느님을 찾으라.’ 분도회의 모토대로 하느님을 찾아 기도함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때 활짝 열리는 길에 눈 밝은 삶이요 단순하고 질서 잡힌 안정과 평화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신, 하느님의 눈을 지닌 분으로 드러납니다.
과연 관상가의 모범입니다.
주변 모두를 통해 그 넘어 하느님을,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봅니다.
주님은 ‘걱정하지 마라. 왜 걱정하느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아라. 이들 보다 훨씬 귀한 너희들이 아니냐?’ 말씀하시며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보고 깨달을 것을 촉구하십니다.
하느님을 못 봐서,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해 쌓여가는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이 모두는 믿음 약함으로 귀결됩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다음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하느님과 재물 중 양자택일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종관계를, 하느님과 재물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주인의 자리에 모시고 재물을 종의 자리에 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신 하느님을 찾을 때 적절한 사람도, 재물도 따르지만, 재물을 찾을 때 하느님도, 사람도, 재물도 서서히 떨어져 나갑니다.
사도행전의 사도 바오로 역시 그리스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삶임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실 체력이 약하기로 하면 왜소한 체구의 바오로보다 더 약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누구보다 강했고 그를 강하게 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힘, 믿음의 힘이었음을 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주님 안에서 약함으로 비워질 때 그 비움의 자리는 그리스도의 힘으로 가득차기에 역설적으로 강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힘으로 살아가기에 활력 넘치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겸손히 비워진 우리 모두를 당신의 힘으로 가득 채워주시어 활력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