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 19일 삼위일체 대축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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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6-19 | 조회수879 | 추천수18 | 반대(0) 신고 |
6월 19일 삼위일체 대축일-요한 3장 16-18절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사랑하면 할수록>
또 다시 사제들에게 가장 난감한 주일, 삼위일체대축일이 돌아왔습니다. 신자들에게 이런 저런 비유를 들어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시키려고 애를 쓰지만, 자칫 적당치 않은 비유를 들다가는 이단이나 오류로 빠지기 십상입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골자는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지니시면서 동시에 한분이시라는 신비입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진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난해하고 심오한 신비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삼위일체 신학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이단적 주장들로 인해 교회가 크게 분열되기도 했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갈라서는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설명할 때는 교회의 전통적인 노선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또한 교부들의 정통한 가르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리옹의 이레네우스(AD 130-202) 교부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모든 구원 역사는 성부로부터 유래하고, 성자에 의해서 실현되며, 성령에 의해서 충만히 성취됩니다. 성자와 성령은 성부이신 ‘하느님의 두 손’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삼위일체에 대한 가르침은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교회의 공식적인 교의로 선포됩니다.
“성부께서는 ‘낳으시는 분’이시고, 성자께서는 ‘나시는 분’이시며, 성령께서는 ‘발(發)하시는 분’이십니다.
박준양 신부님께서는 ‘삼위일체론, 그 사랑의 신비에 관하여’(생활성서사) 란 소책자에서 삼위일체의 큰 신비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쏭달쏭, 긴가민가 하는 우리에게 명쾌하게 선을 그어주고 계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사이에 서열이나 등급이 있는가, 세 위격 중에 성부가 제일 높으신 분이 아닌가, 하는 질문에 세 위격들 사이에는 어떠한 ‘우열’이나 ‘등급’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 위격은 같은 본질, 같은 실체, 같은 본성을 이루시기에 동인한 신원과 동일한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 구분되는 것이 있다면 다만 ‘관계’로 인해 구별될 뿐이다, 라고 강조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 중 어느 분께 드리는 기도가 가장 효과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특별히 어느 한 위격에게 드리는 기도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지금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우리 삶의 자리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더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기도드리면 된다. 한 위격만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바치는 기도라 할지라도 이는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이라고 가르칩니다.
삼위일체대축일에 우리는 하느님께 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크신 하느님, 감히 우러러볼 길 없는 하느님, 위대하신 하느님께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당신 자신의 내적인 신비(삼위일체의 신비)를 열어보이셨기 때문입니다.
한 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에게나 우리 자신의 내면을 낱낱이 다 드러내 보입니까?
오늘 삼위일체대축일, 은혜롭게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 특히 내면의 신비를 활짝 열어 보이십니다. 오직 우리 인간을 향한 극진한 사랑 때문에 미천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의 위대하고 심오한 초월적 신비, 삼위일체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시는 것입니다.
오늘 삼위일체대축일 우리 각자에게 과제가 하나씩 주어집니다. ‘사랑하면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비록 미약하지만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이 깊어갈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더 보이곤 합니다. 오늘 하루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좀 더 순도 높은 사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면 좋겠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서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일을 행해보면 좋겠습니다.
더 그분을 사랑하면 할수록, 더 그분께 가까이 다가설수록, 더 그분의 가르침과 계명에 충실할수록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시고, 마침내 우리 눈을 환하게 뜨게 하시어 당신 존재에 얽힌 신비도 더 많이 알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타나게 되는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가 있습니다. 뭐든 준다는 것입니다. 주고 또 주고, 그래도 뭔가 아쉬워 또 주고 싶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우리를 향한 끝도 없는 자기증여의 표현이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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