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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19일 야곱의 우물- 요한 3,16-18 묵상/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9 조회수372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16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우리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친교 안으로 데려가 그 안에 머물게 하소서.

세밀한 독서  (Lectio)
요한 3, 16은 하느님이 세상을 당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내용을 주제로 합니다. 이 주제는 요한복음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먼저 첫 단어 “하느님” 이 우리의 시선을 끕니다. 하느님 사랑의 신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당신 아들의 구원사명이라는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사건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상징인 니코데모와 예수님이 밤에 나눈 대화 내용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사랑의 주도권은 아들의 십자가 위에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말씀하시는 하느님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1요한 4, 9)  요한복음서 전체에 걸쳐 하느님은 먼저 주도권을 취하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1요한 4, 19)  하느님이 주도권을 취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본질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4, 8) 
 
하느님이 그토록 사랑하신 것은 ‘세상’ 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세상’ 은 인간들의 세계, 곧 인류뿐 아니라 창조된 우주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1, 3. 9. 10; 3, 19 참조)  요한의 관점에 따르면, 세상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세상은 악한 것, 악의 우두머리가 지배하는 곳이 됩니다. (12, 46 – 48; 16, 8 – 9 참조)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활동이 더 전개됨에 따라 ‘세상’ 이라는 용어는 적대적인 어조를 띠게 되고, 대부분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사탄의 인도를 따라간 사람들을 가리키게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보편적이지만 이 보편성은 인간의 응답에 따라 강력하고 힘있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다’ 또는 ‘사랑’ 이라는 말은 요한복음서의 핵심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용어들은 13 – 17장에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비록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지만 그분의 사랑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크기는 외아들을 내어줄 정도에 이릅니다. 이 ‘내주다’ 라는 말은 하느님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 곧 육화와 동시에 십자가에 대한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주다’ 라는 말이 14 – 15절의 ‘들어 올리다’ 라는 말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요한이 단지 외아들의 육화만을 생각했다면, ‘내주다’ 라는 동사 대신 ‘보내다’ 라는 동사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요한이 ‘내주다’ 라는 말을 선택한 것은 그 말을 통해 예수님의 희생 또는 대가를 치르는 봉헌이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이렇게까지 내어준 외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은 예수님을 반대하든가 아니면 찬성하든가를 결정함으로써 자신을 심판하도록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의 현존 자체가 심판이 됩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우리의 본성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자율적인’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 모든 생명의 원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그것은 파멸이요 죽음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심판의 형벌이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삶에서 하느님 앞에서 한 개인이 갖는 책임과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지한 군중이 진리라고 여기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말하는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하게 합니다.

묵상 (Meditatio) 
하느님, 당신한테서 떨어져 나가 우리 자신에게 집중할 때 우리는 파멸과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 생명을 존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당신이 그토록 사랑한 세상의 악과 어둠을 당신의 자비로운 시선으로 굽어보시고 구원해 주십시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탈출 34, 6 – 7)  우리의 희망은 오직 당신 안에 있습니다.

기도 (Oratio)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2코린 13, 13)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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