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하느님-반영억신부-(요한. 3,16-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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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11-06-19 | 조회수40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1년 6월19일 삼위일체 대축일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요한. 3,16-18)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께서 사랑과 용서의 주님이심을 전하신다. 곧 주님께서는 자비하고 너그러우신 분으로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이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기뻐하고 서로 격려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당부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편지를 끝낸다(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복음).
오늘의 묵상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하느님을 알고 싶어 한다면 얼마만큼 설명할 수 있을는지요? 사랑하는 자녀가 하느님에 대해 질문한다면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는지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하느님 -반영억신부-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복음말씀을 인용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이 말씀은 모든 믿는 이들이 가슴에 품어야 할 성경구절입니다.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십니다. 더군다나 영생을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를 이웃과 하나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이 시간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계신다는 계시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사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빚어 만드시는 분이시고 아들은 만드시는 분의 손이시며 성령은 빚어 만든 흙덩이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는 분입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곧 생명을 주신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목표이시며 시작이요, 마침이십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을 위해 아들을 넘겨주신 분입니다. 아들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며 존경과 순명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죄인의 대변자요, 억압 받고 소외 받는 이들의 변호자이십니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자 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 머물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시고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 주시며 또한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해 주시고 새로움을 더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각기 역할이 구별되면서도 삼위일체로 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신비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받아들여집니다. 루카 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잉태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탄생과정부터 성부, 성자, 성령의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고 결실을 이루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루가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 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3,21-22) 라고 적혀 있습니다. 세례 때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18-20)고 하시며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받아 아버지와 하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요한16,14)하시며 역시 아버지와 하나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요한 16,13.14)하셨는데 요한 17,17에 보면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에서는 “한 처음에 말씀이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고 아들과 성령께서도 하나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무한히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을, 아들은 무한히 수용하는 사랑을 성령께서는 무한히 자신을 남에게 연결하고 전달하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C.S 루이스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살아 움직이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기도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분으로, 성자는 기도를 도우시며 중재하시는 분으로, 성부는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해 주시는 분으로서 우리의 영적 생명 안에 활동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부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신비가 사랑 안에서 확인되고 체험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부부간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표현합니다. 일심동체가 되었다는 것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한 마음이 되고 한 마음이 되면 두 몸은 이미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한마음, 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가난해도 풍요로울 수 있고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의지하고 더욱 일치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힘들면 힘이 들수록 더 큰 사랑이 요구됨을 압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끼리 서로 닮아가서 상대방의 모습으로 바뀌기까지는 결코 완전한 것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지위에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느 것으로도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요,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능력이고 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도 사랑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곳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되고 믿음이 더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리하면 많이 행하게 되고 주님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혹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사랑으로 하나가 되신 하느님의 신비를 생각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세상을 향합니다. 모든 이를 향합니다. 재능이 있고 성공한 사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 죄인들을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리고 너무나(이런 식으로) 사랑한 하느님 이십니다. 십자가에 목숨을 내 놓기까지, 우리를 무조건 살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까지는 사랑이 아닙니다. 외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보냈다는 큰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3,17-18) 여기서 우리는 사랑과 심판의 역설을 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면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3,19-20) 결국 심판하는 자는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아니라 빛을 거부한 인간자신입니다. 이 말은 빛이신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 순간부터 계속 어둠 속에 머물게 된다는 말이고 그것은 그 사람이 자초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들이 모세의 손에 높이 들린 구리뱀을 쳐다보았을 때 살았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습니다. 믿음은 그렇다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하는 사람은 새로 태어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죽고 맙니다. 믿음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입니다. 구세주이십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모세의 손에 들린 구리 뱀을 본 사람은 살았듯이 십자가에 높이 들린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명을 그대로 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많이 더웠죠? 퀴즈 맞춰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열바다.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 가장 따뜻한 바다는? 사랑해 @@@ 남자는 체면을 먹고 살며 여자는 기념일을 먹고 산답니다. 그리고 신부는 신자들의 불평, 불만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체면이나 기념일, 불평불만을 먹고 살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고 살아야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 성체를 모시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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