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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변에서 만나는 ‘삼위일체’ 추억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19 조회수560 추천수3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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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살이 풍경 (40)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기억





좀 창피한 말이지만 ‘성인병 백화점’ 신세라서 거의 매일 오후에는 걷기 운동을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처지에 늘 감사하며, 걷는 동안 줄곧 묵주기도를 합니다. 주로 가는 곳이 ‘장명수’라는 바다입니다. 집에서 50분 정도 산길과 들길을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곳이지요. 때로는 해변에다 차를 놓고 해변을 걷기도 하는데, 하루 기본이 왕복 두 시간이고 묵주기도는 40단이랍니다.  
 

▲ 장명수 해변 태안군 태안읍, 근흥면, 남면 사이에 있는 '장명수'라는 이름의 바다는 태안군청 옆에 있는 우리 집에서 보통 걸음으로 50분 거리에 있다. 내가 거의 매일 찾는 곳이고, 어렸을 적 추억이 많은 곳이다.
ⓒ 지요하
태안군
 

해변을 걸을 때는 가끔 소년 시절에 들었던 ‘삼위일체’ 교리가 생각나곤 합니다. 태안본당이 공소이던 시절, 전기도 없던 때였지요. 서산에서 오시어 공소를 세우신 성백석 루까 복사님은 당시 60대 노인이셨는데, 저녁에는 남폿불 밑에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시곤 했습니다.

한번은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시는데, 남폿불을 가리키면서 “이 남폿불도 삼위일체란다. 형체가 있고, 불빛이 있고, 열이 있잖니? 하늘의 태양도 삼위일체야. 형체가 있고, 빛이 있고, 열이 있으니….” 그러더니 아우구스띠노 성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아우구스띠노 성인이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어 고민을 하며 해변을 거닐고 있을 때 한 소년이 갯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파놓고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떠다가 붓고 붓고 하더라는 얘기. 하도 이상하여 성인이 “너 뭐하고 있니?” 묻자 그 소년이 “저 바닷물을 전부 이 웅덩이에 담으려고요.”하더라는 얘기.

중학생 시절에 들었던 그 얘기가 내 뇌리에 찰떡처럼 달라붙어서 50년이 흐른 오늘에도 장명수 해변을 걸을 때는 불현듯 나를 50년 전으로 데려가 주곤 하는 거지요.

나는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묵주기도에도 열중할 수 있고, 이런저런 추억들도 떠올릴 수 있고, 깊은 생각에도 빠져들 수 있으니 방해 받지 않으려고 늘 혼자 걷습니다. 사실은 혼자가 아니지요. 혼자 걷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오늘도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을 걷습니다. 내 몸 역시 삼위일체입니다. 내 몸은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져 있으니 삼위일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 역시 흙과 물과 공기로 이루어졌으니 삼위일체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 삼위일체 세상이 존재하고, 삼위일체 세상 안에 삼위일체인 내 육신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인간인 내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나 자신과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정신이 있고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혼이 있어 나는 오늘도 삼위일체 하느님 안을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것이지요.
                                    
                                                              지요하(소설가․태안성당)
  
  

*천주교 대전교구 <대전주보> 2011년 6월 19일/삼위일체 대축일 | 제208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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