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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21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0 조회수395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1년 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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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오늘 말씀은 가운데 박혀 있는 이 한 말씀으로부터 모든 생각이 시작됩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는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과 같은 내용일겁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것들이 개들에게, 진주가 돼지들에게 던져지는 것을 경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며 말씀을 듣기 시작합니다.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 진주가 무엇인지 그것이 개나 돼지에게 던져지면 짓밟히고 도리어 위험에 쳐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이어집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는 말씀말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개나 돼지에게 거룩한 것과 진주와 같은 것을 주지말라고 말씀은 언뜻 소중한 것을 가치도 모르는 것에게 주지 말라는 금지의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이어 소개되는 지침은 오히려 남에게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혼란을 일으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말씀일까? 거룩한 것과 진주 같은 것을 잘 지켜라는 말씀으로 들었는데, 이어지는 말씀은 내가 바라는 소중한 것을 남에게 해 주라는 가르침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는 말에서 일치하는 듯 보입니다. 율법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삶의 규칙이라면 예언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원하신 기록이자 현실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예언서는 하느님을 닮는 가장 거룩한 것이며 우리에겐 구원의 하느님이라는 가장 소중한 진주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다름아닌 남이 나에게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면 이는 우리가 따라야 할 하느님의 가르침의 가장 실천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또 한 번 모를 듯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거룩한 것과 진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이것이 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마지막 말씀이 천국으로 가는 좁은 문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보다 좀 더 구체적인 상황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천국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곳이지만, 모든 이들이 가장 가기 힘들다고 말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중에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를 말한다면 가고 싶은 사람은 모두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사람만이 허락되는 곳이라는 생각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이 좁은 문이라고 표현하셨다는 것에 주목하여 천국의 문이 무조건 좁다고, 그것도 비유에서 쓰인 표현 그대로 바늘귀만큼 좁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서로 이어가다보면 우리는 이 좁은 문으로 가는 방법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남에게서 바라는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는 말씀을 들은 이들이 어떻게 이 말씀을 거절하고 배신하며 도리어 그들에게 잘해주는 이들을 공격하려 하는지를 영화가 눈앞에 펼쳐지듯 보게 됩니다. 


이 생명으로 이끄는 문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 곧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는 말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나타내줍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들었으나 그들은 이 길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이 삶을 살고 전하는 이들을 조롱하거나 죽임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보이지도 않는 좁은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가는 이들의 사랑을 받고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희생시켜 아무도 그 길을 걷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율법과 예언서가 모두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신이라 부른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앞에 보여주신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세상이 그분께 한 행동들은 그분을 짓밟고 도리어 그분을 물어버리는 십자가로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세상에서 하늘로 향한 유일한 길을 그렇게 막아버린 것입니다.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누가 사랑이 맞다고 살겠습니까? 입으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떠들고, 얼마든지 삼켰다. 익혔다. 배웠다 말해도 결국 따르지도 따라서도 안되는 것으로 만든 사람들. 

그들에게 구원이란 단어는 너무 달콤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구원이란 결국 이 세상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원해주는 하느님이 필요할 뿐 하느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잘해봐야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라는 말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확신처럼 말해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 스스로도 걸어가고 싶지 않은 길이 하느님의 길입니다. 


서로 연결된 듯, 끊어진 듯 보이는 복음 말씀. 그러나 결국 이것은 하늘나라 문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늘나라의 모습을 주님이 보여주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지켜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은 분명 그리스도의 길을 걸으려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길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바른 길입니다. 

그러나 결코 외롭다는 착각은 하지 맙시다. 그 길이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다른 이에게 해 주는 길이라면 그 때 그 길은 숨쉴틈 없이 사랑하며 걷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 길은 좁고 험하고 난감하고 불가능해보이지만 그 길을 걷는 이는 오직 사랑하나를 하며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개들과 돼지들에게 짓밟히고 물렸으나 변하지 않은 거룩함과 진주를 지니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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