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6월 21일 화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수도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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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1-06-21 | 조회수842 | 추천수15 | 반대(0) 신고 |
6월 21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마태오 7,6.12-1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좁은 문>
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리도 자주, 강하게 결심하곤 했지만 정말 실천하기 힘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교통법규 준수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또한 상식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습관이 그렇게 들었는지 어렵습니다.
제가 주로 어기는 법규는 과속입니다. 제한속도 시속 60이나 80 도로를 다닐 때 마다 ‘이게 과연 현실성 있는 속도냐?’며 화까지 냅니다. 그러다가 날아온 딱지도 만만치 않습니다.
언젠가 과속 단속 경찰관으로부터 ‘좁은 도로에서 왜 그렇게 빨리 달리십니까?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마땅히 할 말이 없더군요. 늘 빨리 달렸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바쁘다는 핑계로 신호등을 자주 무시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조금 일찍 출발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이 없는 교차로에서는 빨간불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지나갑니다. 밥 먹듯이 규칙을 어깁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더 안 좋은 것은 아이들이나 후배들이 뒤에 타고 있을 때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때로 현실성이 없어보일지라도 정해진 속도나 기본적인 신호체계들, 각종 교통법규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더디더라도, 목숨 걸고 지킬 때, 평생 대형 사고는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거금’의 범칙금을 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주어진 법규에 따른다는 것, 상식적인 선을 유지한다는 것,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는 것,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정녕 어려운 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초대하십니다.
좁은 문은 어떤 길이겠습니까? 정도(正道)를 의미하겠지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류에게 내려주신 십계명에 충실한 길,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의 계명을 이행하는 길. 결국 그 길은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고지식한 길,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길을 걸어가는 쉽지 않은 길입니다.
생명의 문인 좁은 문을 향해 걸어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더 그렇습니다. 반복되는 악습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원초적 본능과 욕망에 따라 자신을 맡깁니다.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비록 오늘 우리가 너무도 어려서, 너무도 젊어서, 아직 일정한 단계까지 성장하지 못해서 좁은 길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클지라도, 겸손한 기도와 꾸준한 자기정화작업, 하느님께 대한 지속적 의탁을 통해 조금씩 좁은 길로 들어설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오늘 예수님 말씀, 약간 섬뜩하기도 하고, 그래서 걱정되기도 하시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기본적으로 자비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경고성 발언은 당시의 인간들이 저지른 작태가 해도 해도 너무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빨리 그릇된 길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의도,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심을 배경으로 건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무서운 하느님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처럼 그렇게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루는 우리를 사랑했다가 그 다음 날은 미워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오랫동안 넓은 길을 걷고 계셨던 분들, 멸망의 문에서 서성거렸던 분들, 이제 엎질러진 물에 대해 한탄하지 마십시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잘못과 죄 속에서 살지 마십시오. 더 이상 괴로워도 슬퍼도 하지 마시고 모든 과거를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통회의 기도를 드린 다음에는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죄 자체보다도 죄로 인한 낙담으로 하느님을 멀리하는 수가 많습니다. 낙담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고개를 떨어트린 채 뒤로 물러서 있지 마십시오.
이제 일어나 하느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께 가까이 가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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