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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저예요!” - 6.2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1 조회수718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1.6.21 화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1568-1591) 수도자 기념일

창세13,2.5-18 마태7,6.12-14

 

 

 

 

 

“주님, 저예요!”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절망 같은 좁은 문도 희망으로 활짝 열린 넓은 문이 됩니다.

눈만 뜨면 곳곳에 널려있는 삶의 스승들입니다.

 

불암산 절망의 바위틈바구니에 억척스럽게 뿌리내린 희망의 푸른 솔들은 그

대로 절망은 없다는 진리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영적진리는 언제나 역설적입니다.

절망의 자리 바로 거기가 희망의 자리이며, 좁은 문이 바로 넓은 문입니다.

 

예전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어느 선배 교사의

‘그렇게 어렵게 살지 말고 쉽게 살라’는 충고에

‘저에게는 이렇게 사는 것이 쉬운 길입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밖에서는 좁은 문처럼 보여도

내적으로는 넓은 문을 사는 믿음의 사람들도 곳곳에 많습니다.

 

전 주 평화신문 18면의 기사 내용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영상복음’이란 제하에

  오른쪽에는 시멘트 담벼락 좁은 틈바구니에 빨갛게 피어난

  작은 들꽃 두 송이가 있었고,

  왼쪽 위에는 “주님, 저예요!”구절이 크게 적혀 있었으며

  그 밑에는 다음 성구가 적혀있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바로 절망은 없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복음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절망은 없다’는 저의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그 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다

 절망은 없다-(2001.4.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 때 하느님 친히 그의 길잡이가 되어주십니다.

좁은 문은 생명으로 빛나는 넓은 문이 됩니다.

 

분도 규칙도 이런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좁게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마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감미로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다. -

 

참 좁은 문들의 세상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좁은 문이라 출생률이 낮고

살아가는 것도 좁은 문이라 자살률도 높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좁은 문들의 연속입니다.

이 절망과도 같은 좁은 문의 운명을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때

운명의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이끄는 문이 됩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종파를 초월하여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모두가 멸망으로 이끄는 쉽고 편하고 빠른 넓은 문을 선호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창세기의 롯이 바로 그렇습니다.

롯은 넓은 문을 선호하는 성향에

‘어디나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은’

눈에 좋아 보이는 땅을 택하였지만 바로 그 땅은 멸망을 목전에 둔

소돔과 고모라라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말 그대로 좁은 문이 연속되는 삶이었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부터 좁은 문의 여정이 시작되었고

롯 가족과 재산 분쟁의 좁은 문 상황을 겪습니다만

관대함과 분별의 지혜로 좁은 문을 잘 통과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좁은 문을 통과하면서

관대해지는 넓은 마음에 분별의 지혜입니다.

 

이런 이들은 결코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던지는,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묘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아브람은 거기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바로 좁은 문 통과의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늘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시작할 때

좁은 문은 내적으로 넓은 문이 되어

기쁘게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 주님을 위해 제단을 쌓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 좁은 문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또 친히 가이드가 되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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