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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에 대한 짧은 생각] 20110623
작성자김용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1-06-22 조회수32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1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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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당연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 속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만한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우리를 당황시키는 큰 울림으로 퍼집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입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을 드러내는 행위의 가장 대표적인 행위가  '주님!'이라는 호칭이고, 그나마 이것 또한 하루에, 또 일주일에 수를 꼽을 정도의 신앙생활인데, 하느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것만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 말씀은 우리를 당황시킵니다. 

하지만 다음 말씀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어느 정도 안심하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이 말을 들으며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맞장구를 치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에 우리는 다시 가슴에 손을 얹게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멈춰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만약 이 증언의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라면 그것은 위선의 죄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정말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냈으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켰다면 그는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너무도 분명한 예는 이런 것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이야기입니까? 


냉정하게 이어지는 말씀은 이런 의문에 잘라 대답합니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활동인 예언과 하느님의 권능으로 행하는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키는 일들은 하느님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질 만큼 대단한 하느님의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한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증언하는 이 말을 들으시고도 주님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라는 말씀과 더불어 그들을 물리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불법'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말하시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곰곰히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고도 불법을 일삼는 사람이 된 사람들, 그들의 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에대해 그들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자신들이 지녔고, 행사했다는 것에 대해 증언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런 행동들을 모두 불법이라고 이야기하셨다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이런 행동들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것들을 하느님 뜻의 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조차 됩니다. 

'불법'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어겼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예언과 구마와 기적을 행한 것이 불법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은 사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나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실행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내 의지로 행동하는 것들을 말하며 대게는 우리가 삶에서 이루어집니다. 곧 우리 각자의 인생이요, 삶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지 여부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잘 신앙이라는 것을 성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으로 열심을 판단하고, 그 안에서 어떤 능력을 받았고, 어떤 직책을 행하며, 또 어떤 기도를 드리고, 어떤 영적 교류를 하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의 근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들로 그 직책을 받은 이도 행하는 이도 우리와 근본부터 하나도 다르지 않은 형제 자매들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각각이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들은 우리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을 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역할 이상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머물러지고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모든 이에게 전해지는 사랑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증거로 생각되고,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람인냥 생각이 들게 되면 그 때부터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이 아닌 그 사람의 능력이 되고, 곧 그것은 특권으로 여겨지며 나눠짐이 아닌 베풀어지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느님의 능력과 하느님의 말씀이 마치 그 사람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이 주셨으니 언제라도 그것은 하느님이 거둬가실 수도 있는 것이며 그 능력과 사명을 받은 이는 그 능력과 사명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에 사용해야 하며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이 하시는 것임을 본인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일은 엄밀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임을 명심해야 하고, 증언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는 그 일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 직무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스스로 만나는 모든 이들과 세상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동시에 살아야 합니다. 

어떤 곳에서건 하느님의 뜻을 풀이하고 설명하는 이는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과 같은 선상에서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실천해야 할 동일한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귀를 쫓아낸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며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는 마귀에게 그가 힘겨움을 당하지 않도록 그를 지켜내고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쫓아낸 것은 하느님이시고 그를 사랑으로 지키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기적을 행한 이도 자신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스스로를 통해 하셨음을 보았다면 그 능력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그 사랑을 증언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다가가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삶이라는 동일한 세상의 현장이 있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일합니다.
그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두가 동일한 세상을 살아야 하며 하느님을 안다는 이유로 특별한 세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러나 우리가 전혀 다르게 바라보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특별한 세상이 주어지지 않음을 보아야 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든, 모래 위에 집을 짓든 비는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집에 들이친다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세상을 살며 남이 당하는 어려움을 함께 당하게 마련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이유로 풍파도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을 마치 반석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은혜는 그 풍파로 상처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데 사용하고, 우리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럴 수 있는 것을 하느님의 은혜를 통해 그분의 사랑을 봄으로써 배워야 합니다. 

남이 어려울 때 나는 살았다라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말하는 것이 반석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겠습니까?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내리는 비와 홍수와 바람을 모래 위에 집을 지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같은 어려움을 겪고 그럼에도 내가 가진 바를 나누며 쓰러지는 이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 없는 세상에 줄곧 사랑을 이야기하라 하시는 예언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고, 마귀에 시달려 이상하고, 무섭고, 싫어서 가까이 가기 싫은 이에게 마귀를 몰아내시며 그 한 사람을 구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이며, 아픈 이를 낳게 하시어 그의 어려움을 살피시는 하느님의 뜻임을 아는 사람이 된다면 그는 그런 일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런 아버지를 아는 이로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에 기대어 하늘나라에 가면 그 일을 열심히 했노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처럼 나를 따랐노라고 말할 사람들이 우리에게 많습니다. 그것이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일에 충실했으면 그 다음은 그 일을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 많은 풍파가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누군가가 수도 없는 뭇매를 나보다 먼저 맞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보처럼 그들을 구하러 나가야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그러시니 말입니다. 


이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가르침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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