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단순 무식해서 용감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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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1-06-23 | 조회수637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샬롬 샬롬
저는 단순하고 무식해서 용감하기도 하지만 행복합니다.
단순하고 무식해서 말도 안되는 질문을 예수님께 많이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저의 수준에 맞추어 알려 주셨습니다.
저가 나누는 묵상 수준은 바로 저의 수준에 맞추어 알아 들은 저의 삶의 내용임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 형제님이 "편견이야기"라는 마지막 글을 남기고 탈퇴(우리들의 묵상코너)를 선언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편견이라는 말씀이 저의 마음에서 살아 움직였습니다. 뭐라고 위로를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편견이라는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우리는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설명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을 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에페6,10-13)
여기에서 보통 하느님의 무기를 "하느님의 말씀" 곧 성경을 생각하지만 저는 그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무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사탄은 영적 존재이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인간보다 먼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 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하는데 가톨릭 신자들에게 창세기 3장에 갑자기 등장하는 뱀으로 지칭되는 사탄을 하느님께서 만드셨나, 창조이야기 어디에도 사탄을 만드신 이야기는 없는데 어찌된 일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 죽으심으로 사탄을 이기셨다고 하시는 데 왜 사탄은 아직도 일하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얼마나 하시는지요?
이 사탄에 대해서는 루시퍼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시는 소순태씨의 어제의 글을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정말 도움이 됩니다.
정말 단순 무식하게 저가 알아들은 사탄을 소개합니다. (이사14장 참조)
사탄은 원래 천사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마음만 먹었지만 그가 하느님 앞에 서자 그의 마음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두려워 하느님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자신이 마음을 잘못 먹어 자기 스스로 제발로 그곳으로 걸어가 놓고는 거기에서 하느님을 향해 이를 갈았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가까이서 하느님을 모시던 천사였는지라 자신의 능력으로 하느님을 대적할 수 없음을 잘 알았던 그는 하느님을 너무나 잘 알아 하느님의 약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알고 있는 하느님의 약점을 소개합니다.
사탄은 하느님을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이 하느님을 이기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언제 마음이 가장 아프시겠습니까?
자신의 자녀가 아플 때 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자신이 멸망한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여 자기와 함께 있도록 만들어 하느님을 아프게 하려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하느님처럼 된다는 매력은 누구도 뿌리치지 못하는 유혹임을 알기에 자기가 스스로 멸망한 그 생각을 하와에게 귀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하셨는데 사탄은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라며 거짓을 말합니다. 죽는 다 와 죽지 않는 다 어느쪽이 더 매력있게 들리나요? 그리고 눈이 열린다는 사탄의 말은 이미 거짓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고 오히려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오히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하느님을 직접 뵈옵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는 오히려 눈이 어두워져서 하느님을 알아뵙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므로 우리의 영이 죽었기에 죽은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듯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응답한 결과로 눈이 어두워져 사리를 올바로 분별하는 능력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편견으로 보게 되었다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 저자는 1장에서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그 빛으로 하느님을 알아 뵈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믿음을 드리지 못하므로 보통 하느님과 영상 통화는 못하고 아날로그식 통화를 하는 것입니다.
가끔 성인 성녀들은 영상 통화를 하신 줄 우리는 교회의 소개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이루 다 할 수 없는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편견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씀드리려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한계를 잘 아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13,29-30)
이 말씀 안에는 우리를 믿으시는 당신의 마음과 네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 내가 책임지고 가꾸리라는 주님의 의지를 보셔야 합니다.
이 대목은 루카 13,6-9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2베드3,8)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하루 일을 천년에 걸쳐 하시는 마음으로 하시며 우리를 기다리는 마음은 천 년을 하루처럼 생각하시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오늘 저가 소개하는 하느님의 무기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심을 느끼는 것이 우선 되지 않고 성경 말씀만 달 달 달 외운다고 사탄을 이기지 못합니다.
사탄의 실력을 우리는 어쩌면 감당해 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분열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탄도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응답 없이 절대로 우리를 맘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일치와 사랑을 못하도록 나를 이끄는 어떤 말에도 "NO"라고 거절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일치 시키시려 당신이 먼저 삼위가 일체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한 분이 셋으로 쪼개지는 아픔을 먼저 몸소 겪으셔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더 큰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기에 앞서 주님께서 당신을 먼저 사랑 하십니다.
엄마는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사랑을 느끼십시오.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당신은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죽기까지 드러내신 주님의 사랑을 ........
이제까지는 아셨다면 지금은 그 사랑에 잠기십시오.
형제님 덕분에 많은 묵상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 일부만 나누었고 나머지는 시간 되는 대로 나누렵니다. 사실 저의 계획은 오늘 하가르에 대해서 준비 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형제님, 저는 단순 무식하게 삽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아는 데 뭐가 문제냐?"
거기다 나의 남편은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며 나를 후원하는 아들이 있고 나와 함께 울어줄 친구도 있잖아!
이렇게 살아도 죽을 인생 저렇게 살아도 죽을 인생 예수님 하자는 대로 해보다 죽자!
저는 이렇게 삽니다. 사실 예수님을 보세요. 하느님이 오셨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알아 보고 반겼습니까? 그래도 예수님보다는 ............
감사합니다.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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